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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소는 활성화 에너지 장벽을 어떻게 낮출까

송준호(송쌤)송쌤생명과학입시연구소 대표

ΔG가 음수라서 저절로 일어날 수 있는 반응인데도, 실제로는 몇 년이 지나도 눈에 띄게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종이가 산소와 반응해서 이산화탄소와 물이 되는 반응도 자유에너지만 보면 저절로 일어나야 하는데, 책상 위 종이는 멀쩡하잖아요. 왜 이런 "느린 자발성 반응"이 있는지, 그리고 효소가 그걸 어떻게 해결하는지 이번 글에서 다루겠습니다.

반응이 시작되려면 일단 넘어야 할 언덕이 있습니다

안정한 반응물이 생성물로 바뀌려면, 그 중간에 결합이 끊어지고 다시 만들어지는 불안정한 상태를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이 불안정한 중간 상태를 전이상태라고 부르고, 반응물에서 전이상태까지 끌어올리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활성화 에너지(Ea)라고 합니다. ΔG가 최종적으로 얼마나 떨어지는지와, 그 전에 얼마나 높은 언덕을 넘어야 하는지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입니다. 종이와 산소 반응은 ΔG는 크게 감소하지만, 상온에서 그 활성화 에너지 언덕을 넘을 만큼 에너지를 가진 분자가 거의 없어서 반응이 사실상 멈춰 있는 거예요.

효소는 이 언덕의 높이 자체를 낮춥니다

여기서 자주 나오는 오해가 있는데, 효소가 반응의 ΔG를 바꾼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닙니다. 효소는 반응의 자발성(ΔG의 부호)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아요. 오직 활성화 에너지 언덕의 높이만 낮춰서, 반응이 훨씬 빠른 속도로 진행되게 만들 뿐입니다. 언덕의 시작점(반응물)과 끝점(생성물)의 높이 차이는 효소가 있든 없든 똑같습니다.

효소가 이 언덕을 낮추는 방법은 기질을 붙잡아서 전이상태를 안정화시키는 겁니다. 효소 표면에는 활성부위라는 특정한 홈이 있고, 여기에 기질이 결합합니다. 기질이 활성부위에 붙으면 효소는 살짝 모양을 바꾸면서 기질을 더 꽉 감싸는데, 이걸 유도적합이라고 부릅니다. 열쇠와 자물쇠처럼 딱 맞는 모양이 처음부터 고정돼 있는 게 아니라, 기질이 들어오면서 효소 쪽도 함께 형태를 조정한다는 뜻이에요.

효소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자유에너지 그래프: 활성화 에너지 언덕만 낮아지고 반응물과 생성물의 높이 차 ΔG는 같다. 아래는 기질이 활성부위에 들어오면 효소가 모양을 바꿔 감싸고, 생성물이 떨어진 뒤 원래 모양으로 돌아오는 유도적합 과정

효소는 활성화 에너지(Ea)만 낮추고 ΔG는 바꾸지 않는다, 그리고 유도적합 — 송쌤생명과학 자체 제작

왜 하필 그 기질하고만 반응할까 — 기질 특이성

활성부위의 모양과 화학적 성질이 특정 기질의 구조와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하나의 효소는 대개 한 종류(또는 아주 비슷한 소수)의 기질만 인식합니다. 이걸 기질 특이성이라고 하고, 그래서 세포 안에는 반응 하나하나마다 전담 효소가 따로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효소도 조건을 탑니다

효소는 단백질이기 때문에 입체구조가 무너지면(변성) 활성부위 모양도 같이 망가져서 기능을 잃습니다. 그래서 온도와 pH가 효소 활성에 큰 영향을 줍니다. 대부분의 사람 몸속 효소는 체온 근처(약 35~40℃)에서 활성이 가장 높고, 이보다 훨씬 뜨거워지면 변성돼서 오히려 활성이 뚝 떨어집니다. pH도 마찬가지인데, 위에서 작용하는 펩신은 강산성 환경(pH 2 정도)에서 최적으로 작동하지만 소장에서 작용하는 트립신은 중성에 가까운 pH에서 최적으로 작동합니다 — 즉 "최적 pH"는 효소마다 다르지, 모든 효소가 중성을 좋아하는 게 아닙니다.

일부 효소는 혼자서는 일을 못 하고 보조인자(무기이온이나 유기 분자인 보조효소)가 함께 붙어야 활성을 갖습니다. 비타민이 몸에 필요한 이유 중 상당수가 여기서 옵니다 — 여러 효소의 보조효소로 쓰이기 때문이에요.

쌤 한마디: 저해제도 같이 알아두면 좋습니다. 경쟁적 저해제는 기질과 모양이 비슷해서 활성부위를 대신 차지해버리고, 비경쟁적 저해제는 활성부위가 아닌 다른 자리에 붙어서 효소 전체의 모양을 바꿔버립니다. 그래서 경쟁적 저해는 기질 농도를 확 높이면 어느 정도 극복되지만, 비경쟁적 저해는 기질을 아무리 늘려도 잘 극복되지 않습니다.

틀린 내용이나 더 궁금한 점이 있으면 문의하기로 알려 주세요. 확인한 뒤 고치고, 고친 날짜를 위에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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