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계의 설계 — 개방혈관계에서 2심방 2심실까지
송준호(송쌤)송쌤생명과학입시연구소 대표
수업 첫머리에 이 질문을 던집니다. "여러분 몸의 세포 하나하나는 산소와 영양소를 받아야 살아요. 그런데 히드라는 심장도 혈관도 없는데 멀쩡히 삽니다. 우리는 왜 심장이 필요할까요?"
대개 "몸이 크니까요"라는 답이 나옵니다. 맞는 말인데,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몸이 크면 정확히 무엇이 문제가 되는가. 이 질문에 답하고 나면 순환계 단원 전체가 하나의 이야기로 꿰집니다. 오늘은 순환계가 왜 생겨났고, 어떻게 지금의 2심방 2심실까지 왔는지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확산은 느립니다 — 표면적/부피 비의 벽
물질이 저절로 퍼지는 확산은 에너지가 들지 않는 훌륭한 수송법입니다. 다만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어요. 확산으로 물질이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거리의 제곱에 비례해 늘어납니다. 거리가 10배가 되면 시간은 10배가 아니라 100배가 돼요. 1 μm는 순식간이지만 1 cm는 사실상 영원입니다.
여기에 표면적/부피 비(surface area to volume ratio)가 겹칩니다. 몸을 한 변이 2배인 정육면체로 키운다고 해봅시다. 표면적은 4배가 되는데 부피는 8배가 됩니다. 물질이 드나드는 창구(표면적)는 조금 늘고, 물질을 써야 하는 몸(부피)은 훨씬 크게 늘어나는 거예요. 몸이 커질수록 단위 부피당 교환 면적은 줄어듭니다.
그래서 작고 납작한 동물은 순환계 없이 버팁니다. 히드라나 플라나리아는 위수강이라는 갈라진 소화강이 몸 구석구석까지 뻗어 있어, 모든 세포가 물이나 소화강에 거의 맞닿아 있어요. 순환계가 없는 게 아니라 몸 구조 자체가 순환계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몸이 두꺼워지는 순간 이 방법은 끝납니다. 그때 등장하는 해결책이 순환계예요. 확산 거리를 줄일 수 없다면, 액체를 직접 밀어서 날라 버리면 된다는 발상입니다.
순환계의 세 부품, 그리고 두 가지 설계
순환계는 어디를 가도 부품 구성이 같습니다. 펌프(심장), 관(혈관), 그리고 흐르는 액체(혈액 또는 혈림프). 달라지는 것은 이 셋을 잇는 방식이고, 크게 두 갈래로 나뉩니다.
개방혈관계(open circulatory system)는 곤충·갑각류 같은 절지동물과 대부분의 연체동물이 씁니다. 심장이 액체를 밀어내지만, 그 액체는 혈관 끝에서 몸속 빈 공간으로 그냥 쏟아집니다. 이 빈 공간을 혈강이라 하고, 여기서 액체는 조직세포와 직접 몸을 비비며 물질을 주고받아요. 그래서 혈액과 조직액이 구분되지 않고, 이를 합쳐 혈림프라고 부릅니다. 심장이 이완할 때 작은 구멍으로 다시 빨아들이면 한 바퀴가 끝납니다.
폐쇄혈관계(closed circulatory system)는 지렁이 같은 환형동물, 오징어·문어 같은 두족류, 그리고 모든 척추동물이 씁니다. 혈액이 처음부터 끝까지 혈관 안에만 머뭅니다. 조직과의 물질 교환은 혈관 벽을 통해 간접적으로 일어나요. 혈액과 조직액이 확실히 구분됩니다.
| 구분 | 개방혈관계 | 폐쇄혈관계 |
|---|---|---|
| 혈액이 머무는 곳 | 혈관 + 혈강(몸속 빈 공간) | 혈관 안에만 |
| 혈액·조직액 구분 | 구분 없음(혈림프) | 구분됨 |
| 혈압 | 낮음 | 높음 |
| 수송 속도 | 느림 | 빠름 |
| 조절 능력 | 특정 기관에만 보내기 어려움 | 혈관 굵기로 부위별 배분 가능 |
| 에너지 비용 | 적게 듦 | 많이 듦 |
| 예 | 곤충, 갑각류, 대부분의 연체동물 | 지렁이, 두족류, 척추동물 |
여기서 학생들이 꼭 묻습니다. "그럼 개방혈관계는 열등한 건가요?" 아닙니다. 개방혈관계는 낮은 압력으로 충분한 동물에게는 오히려 경제적인 설계예요. 곤충은 애초에 산소를 혈액으로 나르지 않습니다. 기관(기관지처럼 갈라진 공기관)이 조직까지 직접 공기를 배달하거든요. 혈림프는 영양소와 노폐물만 옮기면 되니 세게 밀 이유가 없습니다. 설계는 좋고 나쁨이 아니라 요구 조건에 대한 답입니다. 활발히 움직이는 오징어가 연체동물인데도 폐쇄혈관계를 쓰는 것이 같은 논리예요.
어류의 단일순환 — 아가미를 지나며 압력을 잃는다
이제 척추동물 안으로 들어갑니다. 어류의 순환은 아주 단순해요. 심장 → 아가미 → 온몸 → 심장. 혈액이 심장을 한 번 지나는 동안 몸을 한 바퀴 돕니다. 그래서 단일순환이라고 합니다. 심장도 1심방 1심실로 단순합니다.
구조는 깔끔한데, 여기에 피할 수 없는 문제가 숨어 있습니다. 심실이 힘껏 밀어낸 혈액이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이 아가미의 모세혈관이에요. 모세혈관은 지름이 극히 작아서 흐름에 대한 저항이 큽니다. 이 좁은 그물망을 통과하고 나면 혈압이 뚝 떨어져요.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산소를 실은 혈액이 온몸으로 가야 하는데, 이미 압력을 다 써버린 상태로 출발해야 합니다.
그래서 어류의 체순환은 느립니다. 물속에서 부력의 도움을 받고 체온을 스스로 유지할 필요도 없는 어류에게는 이 정도로 충분했어요. 하지만 육지로 올라와 중력을 온몸으로 받고, 체온까지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동물에게는 어림도 없습니다. 대사율이 높다는 건 산소를 그만큼 빨리, 많이 배달해야 한다는 뜻이니까요.
이중순환 — 펌프를 한 번 더 거치게 만든다
해법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호흡기관을 지나 압력을 잃은 혈액을 심장으로 다시 불러들여, 한 번 더 밀어준 다음 온몸으로 보내는 것. 혈액이 몸을 한 바퀴 도는 동안 심장을 두 번 지나므로 이중순환이라고 합니다.
이중순환은 두 개의 회로로 갈라집니다.
- 폐순환 — 우심실 → 폐동맥 → 폐 → 폐정맥 → 좌심방. 산소를 싣고 이산화 탄소를 버리는 짧은 회로입니다.
- 체순환 — 좌심실 → 대동맥 → 온몸의 조직 → 대정맥 → 우심방. 산소를 배달하는 긴 회로입니다.
여기서 이름 때문에 매년 틀리는 학생이 나옵니다. 폐동맥에는 산소가 적은 혈액이, 폐정맥에는 산소가 많은 혈액이 흐릅니다. 동맥과 정맥은 혈액의 산소량이 아니라 심장에서 나가는 관이면 동맥, 심장으로 들어오는 관이면 정맥으로 정의되기 때문이에요. 이 정의만 붙잡으면 헷갈릴 일이 없습니다.

섞임을 없애고, 폐와 몸에 서로 다른 압력을 보내기까지 — 송쌤생명과학 자체 제작
3방에서 4방으로 — 섞임을 없애는 과정
이중순환이 처음부터 완성형으로 나온 건 아닙니다. 양서류의 심장은 2심방 1심실이에요. 심방은 둘로 나뉘어 폐에서 온 혈액과 몸에서 온 혈액을 따로 받는데, 심실이 하나뿐이라 그 안에서 두 혈액이 어느 정도 섞입니다. 온몸으로 나가는 혈액의 산소 농도가 그만큼 떨어져요.
다만 이 설계에도 쓸모가 있습니다. 개구리는 물속에 오래 있을 때 폐로 가는 혈류를 줄이고 피부호흡에 기댈 수 있는데, 심실이 하나라 그런 배분이 가능합니다. 파충류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심실에 불완전한 벽이 생깁니다. 악어에 이르면 벽이 완전히 나뉘어 사실상 4방 구조가 돼요.
조류와 포유류는 2심방 2심실로 완전히 분리됩니다. 이 설계가 결정적으로 유리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 혈액이 섞이지 않습니다. 좌심실에서 나가는 혈액은 폐를 갓 지난, 산소가 가장 많은 상태 그대로입니다. 배달 효율이 최대가 돼요.
- 두 회로에 서로 다른 압력을 줄 수 있습니다. 이게 더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폐는 심장 바로 옆에 있고 폐포 모세혈관은 얇아서 터지기 쉬워요. 그래서 우심실은 약하게, 좌심실은 강하게 밀어야 합니다. 실제로 좌심실의 근육벽은 우심실보다 훨씬 두꺼워요. 심실이 하나였다면 이렇게 압력을 나눠 줄 수 없습니다.
| 동물군 | 순환 방식 | 심장 구조 | 특징 |
|---|---|---|---|
| 어류 | 단일순환 | 1심방 1심실 | 아가미 통과 후 압력 저하 |
| 양서류 | 이중순환 | 2심방 1심실 | 심실에서 혈액이 일부 섞임 |
| 파충류 | 이중순환 | 2심방 1심실(불완전 격벽) | 악어는 사실상 완전 분리 |
| 조류·포유류 | 이중순환 | 2심방 2심실 | 섞임 없음, 두 회로에 압력 차등 |
조류와 포유류는 계통상 꽤 멀리 떨어진 동물인데 둘 다 4방 심장을 갖습니다. 공통 조상에게 물려받은 게 아니라, 체온을 스스로 유지하는 높은 대사율이라는 같은 요구 조건에 각자 도달한 결과예요. 같은 문제에는 비슷한 답이 나온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쌤 한마디 — 순환계 문제에서 막히면 저는 항상 "이 혈액은 지금 산소를 실으러 가는 길인가, 배달하러 가는 길인가"부터 묻게 합니다. 폐동맥이든 대정맥이든 이름은 잠깐 내려놓고 방향만 따라가세요. 우심장은 몸에서 돌아온 피를 폐로 보내는 쪽, 좌심장은 폐에서 받은 피를 몸으로 보내는 쪽. 이 두 줄만 정확하면 혈관 이름은 저절로 붙습니다.
정리하면
몸이 커지면 표면적/부피 비가 떨어지고 확산 거리가 길어져, 확산만으로는 세포를 먹여 살릴 수 없습니다. 순환계는 액체를 직접 밀어 확산 거리를 짧게 만들어 주는 장치예요. 압력이 낮아도 되는 동물은 개방혈관계로, 빠르고 정교한 배분이 필요한 동물은 폐쇄혈관계로 갔습니다.
척추동물 안에서는 압력 문제가 설계를 끌고 갔습니다. 어류의 단일순환은 아가미에서 압력을 잃고, 이중순환은 호흡기관을 지난 혈액을 심장으로 되불러 한 번 더 밀어줍니다. 2심방 2심실은 그 위에 섞임 제거와 압력 차등이라는 두 가지 이득을 얹은 구조예요.
구조는 여기까지 봤습니다. 그런데 이 펌프는 누가 명령하지 않아도 평생 스스로 뜁니다. 다음 글 심장은 어떻게 스스로 뛰는가 — 박동조율기, 심장주기, 혈압에서 그 자동성의 정체를 봅니다. 혈관마다 압력이 왜 다른지는 혈관과 혈액에서, 이렇게 배달된 산소가 실제로 어떻게 실리고 내려지는지는 기체교환과 산소해리곡선에서 이어집니다.
틀린 내용이나 더 궁금한 점이 있으면 문의하기로 알려 주세요. 확인한 뒤 고치고, 고친 날짜를 위에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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