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송쌤생명과학입시연구소
개념캠벨생명과학

수정과 난할 — 세포는 늘어나는데 배는 커지지 않는다

송준호(송쌤)송쌤생명과학입시연구소 대표

세포 하나가 몸 하나가 됩니다. 문장으로 쓰면 한 줄인데, 실제로는 이 한 줄 안에 생명과학Ⅱ의 어려운 개념들이 거의 다 들어 있어요.

Ch.18에서 배운 차등적 유전자 발현이 기억나시나요. 같은 유전체를 가진 세포들이 서로 다른 유전자를 켜서 다른 세포가 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건 원리였어요. 발생은 그 원리가 실제로 몸을 만드는 현장입니다.

그 현장을 세 편에 걸쳐 봅니다. 이번 글은 첫 단계 — 수정과 난할, 그리고 그 결과로 만들어지는 포배까지입니다.

수정 — 정자가 하는 일은 유전체 배달만이 아니다

수정을 "정자 핵과 난자 핵이 합쳐지는 것"으로만 외우면 이 단원의 절반을 놓칩니다. 수정에는 분명히 구분되는 두 가지 일이 동시에 일어나요.

  • ① 유전체의 결합 — 반수체(n) 두 핵이 만나 이배체(2n) 접합자가 됩니다. 감수분열로 반씩 줄여 놓았던 염색체 수가 여기서 원래대로 돌아옵니다.
  • ② 난자의 활성화 — 정자가 들어오는 자극이 멈춰 있던 난자의 대사를 깨웁니다.

②번이 이 단락의 핵심입니다. 수정되기 전의 난자는 사실상 정지 상태예요. 대사 활성이 매우 낮고, 이미 만들어 둔 mRNA와 단백질을 잔뜩 쌓아 둔 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자가 막과 융합하면 난자 안의 칼슘 이온 농도가 급격히 올라가고, 이걸 신호로 세포 호흡과 단백질 합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 이때 새로 전사가 일어나는 게 아니라, 어머니가 난자에 미리 넣어 둔 mRNA가 번역되기 시작하는 겁니다. 발생 초기의 배는 한동안 자기 유전자를 거의 쓰지 않고 어머니가 남긴 재고로 굴러가요. 이 점은 세 번째 글에서 다시 중요해집니다.

성게처럼 체외수정을 하는 동물에서 이 과정이 특히 잘 연구돼 있습니다. 정자가 난자의 젤리층에 닿으면 첨체반응이 일어나 첨체 속 가수분해 효소가 방출되고, 첨체돌기 표면의 단백질이 난자 표면의 수용체와 맞물립니다. 이 결합이 종마다 특이적이라서, 아무 정자나 아무 난자에 들어가지 못해요.

정자는 왜 하나만 들어가야 하는가

정자 두 개가 들어오면 3n이 됩니다. 염색체 수가 어긋난 접합자는 정상적으로 발생하지 못해요. 그래서 동물은 다정자수정을 막는 장치를 이중으로 갖고 있습니다.

장치작동 방식속도
빠른 차단정자 융합 직후 난자 세포막의 막전위가 바뀌어 다른 정자의 융합을 막는다수 초 이내, 일시적
느린 차단칼슘 방출 → 표층과립이 터지면서 난자 막 바깥에 단단한 수정막이 들뜬다수 분, 지속적

같은 칼슘 신호가 느린 차단과 난자 활성화를 동시에 일으킨다는 점을 눈여겨보세요. 한 개의 스위치로 두 가지 일이 처리됩니다. 다만 빠른 차단은 성게 같은 체외수정 동물에서 뚜렷하고, 포유류에서는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는지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교과서에서 성게를 예로 드는 데는 이유가 있어요.

여기서 자주 틀립니다. "난자 활성화는 정자의 유전체가 들어와야 일어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두 일은 분리돼 있습니다. 활성화는 정자가 들어왔다는 자극에 대한 난자 쪽 반응이에요. 실제로 일부 동물에서는 인위적인 자극만으로도 정자 없이 난할이 시작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유전체 배달과 시동 걸기는 다른 일입니다.

난할 — 개수는 늘고, 하나하나는 작아진다

수정 직후 시작되는 난할(cleavage)은 아주 빠른 세포분열이 연속으로 일어나는 시기입니다. 여기가 이 글에서 가장 많이 틀리는 자리예요.

보통의 체세포분열에서는 세포주기가 G1 → S → G2 → M 으로 돕니다. G기는 세포가 자라고 물질을 축적하는 성장 구간이에요. 그런데 난할에서는 G1과 G2가 거의 없이 S기와 M기만 반복됩니다.

결과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세요. 성장 구간이 빠졌으니 세포가 자랄 시간이 없습니다. 분열할 때마다 세포질을 그냥 반으로 나눠 갖습니다.

일반 체세포분열난할
세포주기G1-S-G2-MS-M 반복 (G기 거의 없음)
분열 속도느림매우 빠름
딸세포 크기모세포와 비슷하게 회복분열할 때마다 작아짐
전체 크기조직이 커짐배 전체는 거의 그대로
핵 대 세포질 비일정하게 유지점점 커짐

정리하면 난할은 커지는 과정이 아니라 쪼개는 과정입니다. 커다란 세포 하나가 수백, 수천 개의 작은 세포로 나뉘는 것이지, 세포가 늘어난 만큼 배가 부풀지 않아요. 8세포기의 배와 수정란의 크기가 거의 같습니다.

여기서 가장 많이 틀립니다. "세포 수가 늘었으니 배도 커졌겠지"라는 오해. 그림에서 세포가 많아지니까 자연스럽게 그렇게 읽히는데, 사실은 정반대입니다. 세포 수는 늘고, 세포 하나의 부피는 줄고, 배 전체 부피는 거의 변하지 않습니다. 서술형에서 "난할의 특징을 쓰시오"가 나오면 이 세 가지를 한 문장씩 쓰는 게 가장 안전한 답입니다.

그럼 왜 굳이 이렇게 할까요. 두 가지 이유를 알아 두면 좋습니다.

  • 세포 하나가 너무 크면 관리가 안 됩니다. 난자는 세포치고 엄청나게 큽니다. 핵 하나가 그 넓은 세포질을 통제하기 어렵고, 물질이 확산으로 도달하는 데도 오래 걸려요. 잘게 나누면 핵 대 세포질 비가 정상 범위로 돌아옵니다.
  • 세포질을 나눠 갖는 것 자체가 목적입니다. 난자 세포질은 균일하지 않습니다. 난할면이 어디를 지나가느냐에 따라 딸세포가 서로 다른 물질을 물려받게 되고, 이게 세포 운명의 첫 갈림이 됩니다. 이 이야기는 세 번째 글의 주제예요.

수정란에서 2·4·8세포기와 상실배를 거쳐 포배까지 바깥 지름은 그대로인 채 칸만 늘어나는 난할, G기가 빠져 S와 M만 반복하는 세포주기 비교, 그리고 난황의 양과 분포가 전할과 부분할을 가르는 네 가지 알

세포 수는 늘고 세포 하나는 작아지고 배 전체 부피는 그대로다 — 송쌤생명과학 자체 제작

난황이 난할의 모양을 정한다

난할이 모든 동물에서 똑같이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결정적인 변수가 난황이에요. 난황은 배가 발생하는 동안 쓸 양분 저장고인데, 물리적으로 걸쭉하고 무거워서 난할면이 쉽게 통과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난황이 많을수록, 그리고 한쪽에 몰려 있을수록 난할이 방해를 받습니다. 난황이 상대적으로 적은 쪽을 동물극, 난황이 몰린 쪽을 식물극이라고 불러요.

난자의 종류난황 분포난할 양상예
등황란적고 고르게전할 · 등할 — 배 전체가 거의 같은 크기로 갈라짐성게, 포유류
약단황란식물극에 다소 치우침전할 · 부등할 — 전체가 갈라지되 동물극 쪽이 작고 빠름양서류
강단황란대부분이 난황부분할 · 반할 — 동물극 위 원반 부분만 갈라짐조류, 파충류, 대부분의 어류
중황란가운데에 몰림부분할 · 표할 — 표면 쪽만 갈라짐곤충

두 축으로 읽으면 외우기 쉽습니다. 난할면이 배 전체를 지나가면 전할, 일부만 지나가면 부분할. 전할 안에서도 딸세포 크기가 같으면 등할, 다르면 부등할입니다. 양서류에서 동물극 쪽 세포가 더 작고 빽빽한 이유는 단순합니다 — 난황이 적어서 분열이 빨리 진행되기 때문이에요.

상실배에서 포배까지

난할이 계속되면 세포들이 오디 열매처럼 뭉친 덩어리가 됩니다. 이 단계가 상실배(morula)예요. 아직 속이 꽉 차 있습니다.

분열이 더 진행되면 세포들이 바깥쪽으로 배열되면서 안쪽에 액체로 찬 빈 공간이 생깁니다. 이 공간이 포배강(blastocoel)이고, 포배강을 가진 이 단계를 포배(blastula)라고 합니다.

포배는 한 겹 정도의 세포층이 공을 이룬 구조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아직 몸의 어떤 부분도 만들어지지 않았어요. 속이 빈 공. 여기까지가 난할의 결과물입니다.

포유류는 조금 다른 이름을 씁니다. 포배에 해당하는 단계를 배반포(blastocyst)라고 부르고, 여기에는 바깥을 둘러싼 영양막과 한쪽에 치우쳐 뭉친 내세포덩어리가 있습니다. 실제 배아의 몸이 되는 건 내세포덩어리 쪽이고, 영양막은 자궁 내막에 착상해 태반의 태아 쪽 부분을 만듭니다. 포유류가 난황을 거의 갖지 않고도 발생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 난황에 저장해 둘 필요 없이 어머니에게서 직접 받으니까요.

헷갈리는 자리 하나 더. 포배강은 나중에 체강이 되는 공간이 아닙니다. 낭배형성이 시작되면 세포가 안으로 밀려 들어오면서 포배강은 오히려 줄어들거나 사라집니다. 포배강과 원장, 체강은 서로 다른 공간이에요. 다음 글에서 이 셋이 어떻게 갈라지는지 정리합니다.
쌤 한마디 — 이 단원은 그림 문제가 많습니다. 그림을 볼 때 가장 먼저 세 가지를 확인하세요. ① 세포 수 ② 세포 하나의 크기 ③ 배 전체 크기. 난할 구간에서는 ①만 늘고 ②는 줄고 ③은 그대로여야 합니다. 이 셋이 머리에 박혀 있으면 난할 그래프 문제는 거의 자동으로 풀립니다. 그리고 난황 표는 통째로 외우지 말고 "난황이 많으면 난할면이 못 지나간다" 한 문장만 붙들고 각 경우를 유도해 보세요. 표를 외운 학생보다 유도한 학생이 변형 문제에 훨씬 강합니다.

정리하면

수정은 반수체 두 핵을 합쳐 이배체 접합자를 만드는 일이자, 멈춰 있던 난자의 대사를 깨우는 일입니다. 칼슘 신호 하나가 표층과립 반응(다정자수정 느린 차단)과 난자 활성화를 함께 일으키고, 이때 새로 전사하는 대신 어머니가 저장해 둔 mRNA를 번역하기 시작합니다.

난할은 G기가 거의 없는 S-M 반복이라, 세포 수는 늘고 세포 하나는 작아지고 배 전체 크기는 거의 그대로입니다. 난황의 양과 분포가 난할 양상을 결정해 전할(등할·부등할)과 부분할(반할·표할)로 갈립니다. 난할의 결과로 상실배를 거쳐 포배강을 가진 포배가 만들어집니다.

여기까지 세포는 늘었지만 아직 아무것도 아닙니다. 속이 빈 공일 뿐이에요. 몸의 설계가 실제로 정해지는 건 다음 단계입니다. 낭배형성과 삼배엽에서, 세포가 안으로 말려 들어가면서 무엇이 정해지는지 보겠습니다.

틀린 내용이나 더 궁금한 점이 있으면 문의하기로 알려 주세요. 확인한 뒤 고치고, 고친 날짜를 위에 남깁니다.

함께 보면 좋은 글

이 개념과 이어지는 글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