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이 — 맨땅에서 숲까지, 그리고 불탄 자리에서 다시
송준호(송쌤)송쌤생명과학입시연구소 대표
산불이 난 자리 사진과 화산이 막 식은 용암대지 사진을 나란히 띄워 놓고 묻습니다. "둘 다 지금은 아무것도 없어 보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어느 쪽이 먼저 숲이 될까요?"
대개 "비슷하지 않을까요"라는 답이 나옵니다. 아닙니다. 산불 자리가 훨씬 빠릅니다. 겉보기엔 둘 다 비어 있는데 왜 속도가 다를까요? 이 질문 하나에 오늘 배울 내용이 거의 다 들어 있습니다.
천이란 무엇인가 — 군집이 바뀐다
앞 글에서 군집의 구조를 봤습니다. 우점종이 있고, 먹이 그물이 있고, 층상 구조가 있었죠. 그런데 그 구조는 처음부터 그렇게 있던 게 아닙니다. 천이(succession)는 어떤 지역의 군집이 시간이 흐르면서 일정한 방향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입니다.
천이에서 가장 중요한 감각은 이겁니다. 먼저 들어온 종이 환경을 바꿔 놓고, 바뀐 그 환경이 다음 종을 불러들입니다. 그리고 새로 들어온 종은 대개 자기를 불러들인 앞 종에게 불리한 환경을 만들어요. 그래서 우점종이 계속 교체됩니다. 천이는 그냥 "시간이 지나서 변한다"가 아니라, 생물이 스스로 자기 다음 차례를 만드는 과정입니다.
1차 천이와 2차 천이 — 출발점이 다르다
천이를 나누는 기준은 단 하나, 시작할 때 토양이 있느냐입니다.
| 구분 | 1차 천이 | 2차 천이 |
|---|---|---|
| 출발 장소 | 생물도 토양도 없는 곳 | 기존 군집이 파괴됐지만 토양은 남은 곳 |
| 예 | 식은 용암대지, 빙하가 물러난 암반, 새로 생긴 호수 | 산불이 지나간 숲, 벌목지, 버려진 경작지 |
| 개척자 | 지의류(건성) 또는 식물성 플랑크톤(습성) | 초본류 |
| 속도 | 매우 느림 | 훨씬 빠름 |
맨 앞 줄에 밑줄을 쳐 두세요. 시험에서 1차/2차를 가르라는 문제는 결국 "토양이 남아 있었나" 하나만 묻습니다. 산불 자리는 나무가 타 없어져서 비어 보이지만 흙은 그대로 있습니다. 그래서 2차 천이예요.
왜 2차 천이가 빠른가
이유를 나열해 보면 답이 명확합니다. 남아 있는 토양에는 이런 것들이 들어 있어요.
- 양분과 유기물 — 식물이 바로 뿌리를 내리고 자랄 수 있습니다.
- 수분을 머금는 구조 — 암반과 달리 물이 바로 흘러가 버리지 않습니다.
- 땅속에 남은 씨앗과 뿌리 — 불에 타지 않고 남은 종자·지하경에서 곧바로 싹이 틉니다.
- 토양 미생물 — 분해와 물질 순환이 이미 돌아가고 있습니다.
반면 1차 천이는 토양을 만드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바위가 부스러져 흙이 되기까지가 가장 오래 걸리는 구간이에요. 그러니 1차 천이의 앞부분을 통째로 건너뛰고 시작하는 셈인 2차 천이가 빠를 수밖에 없습니다.
건성 천이 — 지의류에서 시작한다
육상에서 맨 암반부터 시작하는 1차 천이를 건성 천이라고 합니다. 순서를 외우려 하지 말고 왜 그 순서인지로 잡으세요.
용암대지·암반 → 지의류 → 이끼 → 초본 → 관목 → 양수림 → 혼합림 → 음수림(극상)
- 지의류가 첫 주자인 개척자(pioneer species)입니다. 균류와 조류가 상리공생하는 생물이라 흙이 없어도 바위에 붙어 광합성으로 버틸 수 있어요. 게다가 분비하는 산과 물리적 작용으로 바위를 부숩니다. 여기에 죽은 지의류가 쌓이면 얇은 토양이 생깁니다.
- 흙이 조금 생기면 이끼가 들어오고, 더 두꺼워지면 초본(풀)이, 그다음 관목이 자리를 잡습니다. 뿌리가 깊어질수록 필요한 토양 두께도 두꺼워지는 순서예요.
- 토양이 충분해지면 양수림이 들어섭니다. 양수는 빛을 많이 요구하는 대신 빠르게 자라는 나무라, 아직 그늘이 없는 개방된 땅에서 유리합니다.
- 양수림이 우거지면 혼합림을 거쳐 음수림이 되고, 여기서 안정됩니다.
개척자의 조건을 한 줄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척박한 환경을 견디고, 자기가 살면서 그 환경을 다음 생물이 살 만하게 바꿔 놓는 종. 지의류가 첫 주자인 이유가 이 문장에 다 들어 있습니다.
왜 하필 음수림이 마지막인가 — 묘목을 보세요
이 단원에서 제일 자주 나오고 제일 자주 틀리는 대목입니다. "양수림 다음에 왜 음수림이 오나요? 양수가 더 빨리 자란다면서요."
맞습니다. 양수가 더 빨리 자라요. 그런데 비교해야 할 대상은 다 자란 큰 나무가 아니라, 숲 바닥에 있는 어린 묘목입니다.
양수림이 우거지면 어떻게 되는지 보세요. 위층 잎들이 빛을 거의 다 가로챕니다. 그래서 숲 바닥은 어두워집니다. 이 어두운 바닥에서 두 종류의 묘목이 경쟁합니다.
| 구분 | 양수 묘목 | 음수 묘목 |
|---|---|---|
| 내음성(그늘 견디는 힘) | 약함 | 강함 |
| 빛이 충분할 때 성장 | 빠름 | 상대적으로 느림 |
| 우거진 숲 바닥에서 | 빛이 모자라 제대로 못 자람 | 약한 빛으로도 자라 살아남음 |
결론이 따라옵니다. 양수림 아래에서 양수는 자기 자식을 못 키우고, 음수는 키웁니다. 세대가 지나 위층의 양수가 수명을 다해 쓰러지면, 그 자리를 채울 준비가 된 건 아래에서 자라던 음수 묘목뿐이에요. 그래서 양수림 → 혼합림 → 음수림으로 넘어갑니다.
즉 양수림은 스스로 만든 그늘 때문에 자기 자리를 내주게 됩니다. 앞에서 말한 "먼저 온 종이 바꿔 놓은 환경이 다음 종을 부른다"의 가장 깔끔한 사례입니다.
이렇게 도달해 더 이상 우점종이 크게 바뀌지 않고 안정된 상태를 극상(climax)이라고 합니다. 우리 기후에서는 보통 음수림이 극상이에요. 여기서 주의할 게 있어요. 극상은 아무 변화도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개체는 계속 죽고 태어나요. 다만 군집 수준의 종 구성이 유지된다는 뜻입니다.
습성 천이 — 물에서 시작하는 경우
1차 천이가 물에서 시작하면 습성 천이가 됩니다.
빈영양호 → 부영양호 → 습원 → 초원 → (이후 건성 천이와 같은 길)
처음엔 양분이 적은 맑은 호수에 식물성 플랑크톤이 들어옵니다. 생물이 늘고 죽은 유해와 흘러든 흙이 바닥에 쌓이면서 호수가 점점 얕아집니다. 얕아진 물가에 물풀이 자리 잡고, 더 메워지면 축축한 습원이 되고, 물이 빠지면 초원이 됩니다. 그다음부터는 건성 천이와 같은 경로로 관목림·양수림을 거쳐 음수림까지 갑니다.
정리하면 습성 천이의 동력은 퇴적으로 인한 육지화입니다. 출발점이 물이라 앞 단계가 다를 뿐, 뒷부분은 하나로 합쳐집니다.
2차 천이 — 초본부터 시작한다
산불이나 벌목, 경작 포기로 기존 군집이 사라진 자리입니다. 토양이 남아 있으니 지의류 단계가 필요 없어요.
기존 군집 파괴 → 초본 → 관목 → 양수림 → 혼합림 → 음수림(극상)
개척자가 지의류가 아니라 초본이라는 점, 이게 1차 천이와 가르는 두 번째 포인트입니다. 땅속에 남은 씨앗과 뿌리, 바람에 실려 오는 가벼운 종자를 가진 풀들이 먼저 뒤덮습니다.
그리고 중간 단계에서 종 다양성이 꽤 높아지는 구간이 나타납니다. 먼저 자리 잡은 풀과 새로 들어온 관목, 어린 나무가 섞여 있는 시기죠. 극상에 도달하면 오히려 우점종이 뚜렷해지면서 다양성이 조금 줄기도 합니다. 종 다양성을 균등도까지 포함해 본다면 이 변화가 이해됩니다.
쌤 한마디 — 천이 문제는 세 칸만 확인하면 거의 다 풀립니다. ① 출발점에 토양이 있었나(1차냐 2차냐) → ② 물에서 시작했나 뭍에서 시작했나(습성이냐 건성이냐) → ③ 개척자가 누구인가(지의류·플랑크톤·초본). 그리고 음수림이 마지막인 이유를 물으면 큰 나무가 아니라 묘목의 내음성으로 답하세요. 이 한 줄을 정확히 쓰는 학생과 "음수가 더 강해서"라고 쓰는 학생의 점수가 갈립니다.

출발점을 가르는 것은 단 하나, 토양이 남았는가다 — 송쌤생명과학 자체 제작
교란 — 천이는 늘 끝까지 가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교과서의 화살표만 보면 모든 군집이 언젠가 극상에 도달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산불·태풍·홍수·산사태 같은 교란이 중간에 들어와 천이를 되돌리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교란이 무조건 나쁜 것도 아닙니다. 적당한 교란은 우점종이 자리를 독차지하는 것을 막아, 오히려 더 많은 종이 공존할 틈을 만들어 줍니다. 경쟁 배타를 늦추는 역할이죠. 불가사리라는 핵심종이 했던 일을 자연재해가 대신 하는 셈입니다.
그래서 실제 자연의 경관은 극상림 한 덩어리가 아니라, 서로 다른 천이 단계에 있는 조각들이 이어 붙은 모자이크에 가깝습니다.
정리하면
천이는 군집이 시간에 따라 일정한 방향으로 바뀌는 과정이고, 그 동력은 먼저 온 생물이 환경을 바꿔 다음 생물을 부르는 구조입니다.
토양이 없는 곳에서 시작하면 1차 천이(건성은 지의류, 습성은 플랑크톤이 개척자), 토양이 남은 곳에서 시작하면 2차 천이(초본이 개척자)입니다. 2차가 빠른 이유는 양분·수분·씨앗을 품은 토양이 이미 있어 앞 단계를 건너뛰기 때문이고요.
그리고 음수림이 극상이 되는 이유는 큰 나무의 힘이 아니라 어두운 숲 바닥에서 묘목이 자랄 수 있느냐, 즉 내음성의 차이입니다.
이것으로 Ch.54 생물다양성과 군집 네 편이 마무리됩니다. 부호로 정리한 종간 상호작용, 자리를 나눠 갖는 생태적 지위와 경쟁 배타, 그 결과로 만들어진 군집의 구조, 그리고 오늘의 천이까지 한 줄로 이어 보면 이 단원이 하나의 이야기로 읽힙니다. 개체군 하나의 크기가 어떻게 조절되는지 다시 보고 싶다면 개체군의 조절로, 생물이 환경에 맞춰 변해 온 과정은 자연선택으로 돌아가도 좋습니다.
틀린 내용이나 더 궁금한 점이 있으면 문의하기로 알려 주세요. 확인한 뒤 고치고, 고친 날짜를 위에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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