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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선택은 지금도 작동한다 — 적응, 그리고 흔한 오해들

송준호(송쌤)송쌤생명과학입시연구소 대표

수업에서 이렇게 물어봅니다. "기린 목은 왜 길어졌을까요?" 그러면 열에 여덟은 이렇게 답해요. "높은 데 잎을 먹으려고 목을 늘리다 보니까요."

이 문장 안에 오늘 다룰 오해가 전부 들어 있습니다. 필요해서 만들어졌다는 생각, 개체가 변했다는 생각, 목적이 있었다는 생각. 진화의 증거는 앞 글에서 봤으니, 이번엔 그 진화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정확한 문장으로 다시 세워봅시다.

적응은 "선택된" 것이지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적응(adaptation)은 생물이 환경에 맞춰 스스로 바꾼 무언가가 아닙니다. 집단 안에 이미 존재하던 변이 가운데, 그 환경에서 번식에 유리했던 쪽이 세대를 거치며 비율이 높아진 결과입니다.

순서가 중요합니다. 변이가 먼저 있고 환경이 나중에 고릅니다. 항생제 내성이 이걸 가장 깔끔하게 보여줘요. 흔히 "항생제를 만나서 세균이 내성을 획득했다"고 말하는데 실제로는 반대입니다. 세균 집단에는 항생제를 만나기 전부터 돌연변이로 생긴 내성 개체가 아주 낮은 비율로 이미 섞여 있어요. 1940~50년대에 세균을 항생제나 파지에 노출시키기 전에 이미 저항성 개체가 존재했음을 보인 실험들이 이 점을 확정했습니다. 항생제는 그 변이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나머지를 제거해서 비율을 올렸을 뿐이죠.

변이는 무작위, 선택은 비무작위

이 한 줄이 자연선택의 핵심입니다. 두 단계는 성격이 완전히 달라요.

단계무엇이 일어나나무작위인가
변이 발생돌연변이, 유성생식의 재조합으로 새로운 조합이 생김무작위 — 필요한 방향으로 생기지 않음
선택환경에서 번식에 유리한 변이가 더 많은 자손을 남김비무작위 — 환경이 방향을 정함

돌연변이는 "지금 추우니까 털을 두껍게 하는 변이를 만들자"는 식으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중립이거나 해롭고, 유리한 변이는 드물게 우연히 생기죠. 그런데 선택은 무작위가 아닙니다. 그래서 자연선택을 "우연의 산물"이라고만 말하면 절반이 틀려요. 재료를 던지는 손은 눈이 멀었지만 고르는 손은 눈이 있습니다. 유성생식이 매 세대 이 재료 더미를 어떻게 채우는지는 유성생식이 만드는 유전적 변이에서 다뤘습니다.

적합도는 "오래 사는 것"이 아니다

적합도(fitness)는 한 개체가 다음 세대에 남기는 생존 가능한 자손의 상대적 수입니다. 힘이 세거나 건강하거나 오래 사는 것 자체는 적합도가 아니에요. 그런 형질이 자손 수로 이어질 때만 계산에 들어갑니다. 200년을 사는 개체라도 자손을 하나도 남기지 않으면 적합도는 0이죠.

거꾸로 수컷 공작의 거대한 꼬리는 생존에는 확실히 손해입니다. 무겁고, 눈에 띄고, 도망치기 불리해요. 그런데도 유지되는 건 짝짓기에서 얻는 이득이 그 손해보다 크기 때문입니다. 적합도의 기준이 생존이 아니라 번식이라는 걸 이보다 잘 보여주는 예가 없습니다.

집단 안에 이미 있던 변이가 환경에 의해 걸러져 세대별 비율이 바뀌는 과정, 개체가 변한다는 오해와 집단 빈도가 변한다는 사실의 대비, 그리고 역사적 제약·타협·유전적 부동이라는 자연선택의 세 가지 한계

선택의 실제 순서, 가장 흔한 오해의 정정, 그리고 자연선택의 한계 — 송쌤생명과학 자체 제작

자연선택은 왜 완벽한 설계를 만들지 못하나

학생들이 "그렇게 오래 골랐으면 지금쯤 완벽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습니다. 그렇지 않은 이유가 네 가지 있습니다.

  • 역사적 제약 — 선택은 백지에서 시작하지 못하고 이미 있는 구조를 고쳐 쓸 뿐입니다. 사람의 척추는 네 발로 걷는 구조에서 출발해 직립에 전용된 것이고, 그래서 허리 통증과 무릎 부담이라는 대가를 안고 삽니다.
  • 타협 —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습니다. 공작의 꼬리가 그렇고, 낫모양적혈구 대립유전자도 그래요. 이형접합자는 말라리아에 저항성을 갖지만 동형접합자는 심한 빈혈을 앓습니다. 말라리아가 흔한 지역에서 이 유전자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죠.
  • 변이의 한계 — 선택은 있는 것 중에서만 고릅니다. 더 나은 해법에 해당하는 변이가 그 집단에 아예 없으면 아무리 유리해도 선택될 수가 없어요.
  • 우연 — 집단 크기가 작으면 대립유전자 빈도가 그냥 우연히 출렁입니다. 이걸 유전적 부동이라 해요. 유리한 변이를 가진 개체가 번식 전에 낙석에 깔릴 수도 있고, 소수 개체만 새 섬에 정착하면 그들이 우연히 가진 조합이 그대로 집단의 특징이 됩니다.
쌤 한마디 —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이라는 표현은 사실 다윈이 처음 쓴 말이 아니라 허버트 스펜서의 문구를, 다윈이 나중 판에서 받아들인 것입니다. 저는 이 표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생존과 강함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어서 번식이라는 진짜 기준을 가려버리거든요. 굳이 한 줄로 바꾼다면 "그 환경에서 자손을 더 남긴 쪽이 다음 세대에 더 많아진다" 정도가 정확합니다. 밋밋하지만 정확한 쪽이 낫습니다.

흔한 오해 다섯 가지를 정면으로

"진화는 개체가 변하는 것이다." — 틀렸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은 평생 진화하지 않습니다. 진화의 단위는 집단이에요. 어두운 나방이 밝게 변한 게 아니라, 집단 안에서 밝은 개체와 어두운 개체의 비율이 세대를 거치며 달라진 겁니다. 개체는 태어날 때 받은 유전자로 살다 죽고, 변하는 건 집단의 통계입니다.

"진화에는 목표가 있다." — 틀렸습니다. 선택은 지금 이 환경에서만 작동하고, 환경이 바뀌면 방향도 바뀝니다. 갈라파고스 핀치 집단은 가뭄 때 부리가 두꺼워지는 쪽으로 움직였다가 비가 많이 온 해에는 반대 방향으로 되돌아갔어요. 그래서 "~하기 위해 진화했다"는 문장은 쓰면 안 됩니다. 기린은 높은 잎을 먹기 위해 목을 늘린 게 아니라, 마침 목이 긴 쪽이 더 많은 자손을 남긴 환경이 오래 이어진 결과입니다.

"더 진화한 생물이 있다." — 틀렸습니다. 지금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은 공통 조상 이래 정확히 같은 시간을 진화해왔어요. 대장균은 덜 진화한 생물이 아니라 자기 방식으로 가장 성공한 생물 중 하나입니다. 계통수는 사다리가 아니라 나무고, 사람은 꼭대기가 아니라 수많은 잔가지 끝 중 하나예요. "하등생물·고등생물"이라는 말을 답안지에 쓰지 않는 습관을 들이세요.

"자연선택은 곧 생존경쟁이다." — 반만 맞습니다. 경쟁은 자연선택이 작동하는 방식 중 하나일 뿐이에요. 기준은 어디까지나 번식 성공이라서, 협력하는 쪽이 자손을 더 남기는 환경에서는 협력이 선택됩니다. 무리를 이뤄 새끼를 지키는 행동, 화려한 구애 신호, 공생 관계가 모두 자연선택의 산물이죠.

"쓰면 발달하고 안 쓰면 퇴화한다." — 이건 라마르크가 제시한 획득형질의 유전입니다. 라마르크는 생물이 시간에 따라 변한다고 주장한 중요한 학자였고 그 방향 자체는 옳았어요. 다만 메커니즘이 달랐습니다. 평생 운동해서 굵어진 근육은 몸에서 일어난 변화지 생식세포의 DNA에 기록되는 변화가 아니고, 그래서 자식에게 전달되지 않습니다. 참고로 흔적기관도 "안 써서 줄어든" 게 아니에요. 그 구조를 유지하는 비용이 이득보다 커진 환경에서 작은 쪽이 선택된 결과입니다.

정리하면

자연선택은 네 조건만 있으면 저절로 돌아갑니다. 집단 안에 변이가 있고, 그 변이가 유전되고, 태어나는 자손이 살아남을 수 있는 수보다 많고, 변이에 따라 번식 성공에 차이가 있으면 됩니다. 의도도 목표도 설계자도 필요 없어요. 대신 한계도 분명합니다 — 있는 재료로만, 지금 환경에 대해서만, 우연의 흔들림을 안은 채 작동합니다.

그런데 "집단의 비율이 변한다"고 말한 순간 새로운 질문이 생깁니다. 그 비율은 어떻게 측정하고, 언제 변하고 언제 변하지 않을까요. 다음 개념부터는 집단을 유전자 빈도로 다루는 집단유전학으로 들어갑니다. 진화가 비로소 숫자로 계산되기 시작하는 자리입니다.

틀린 내용이나 더 궁금한 점이 있으면 문의하기로 알려 주세요. 확인한 뒤 고치고, 고친 날짜를 위에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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