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처리의 네 단계 — 왜 굳이 부수고 다시 만드나
송준호(송쌤)송쌤생명과학입시연구소 대표
앞 글에서 동물이 음식에서 무엇을 얻어야 하는지를 정했습니다. 그런데 정해 놓고 보면 이상한 점이 하나 있어요.
소고기의 주성분은 단백질입니다. 내 근육의 주성분도 단백질이에요. 그러면 소의 단백질을 그대로 내 근육에 붙이면 안 되나요? 굳이 아미노산 낱개까지 다 부순 다음에 처음부터 다시 조립하는 건 명백히 손해로 보입니다. 에너지도 들고 시간도 들어요.
이 글은 그 "손해"가 왜 필수인지에서 시작합니다. 거기에 소화계의 존재 이유가 통째로 들어 있거든요.
먼저 순서 — 음식 처리는 네 단계입니다
단어가 비슷해서 자주 뒤섞이는데, 각 단계에서 물질이 어디에 있는지를 같이 보면 헷갈리지 않습니다.
| 단계 | 하는 일 | 이때 음식물의 위치 |
|---|---|---|
| ① 섭취(ingestion) | 먹는다 | 소화관 안 (= 아직 몸 바깥) |
| ② 소화(digestion) | 고분자를 단위체로 분해한다 | 소화관 안 (= 아직 몸 바깥) |
| ③ 흡수(absorption) | 단위체를 세포 안으로 들인다 | 여기서 처음으로 몸 안으로 |
| ④ 배설(elimination) | 소화되지 않은 것을 내보낸다 | 몸 밖으로 |
표의 오른쪽 열이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관점입니다. 소화관 안은 위상학적으로 몸의 바깥입니다. 도넛을 생각해 보세요. 도넛 구멍은 도넛의 일부가 아니라 바깥 공기가 지나가는 통로죠. 사람 몸도 입에서 항문까지 뚫린 도넛이고, 그 통로 안쪽은 피부와 마찬가지로 외부와 이어진 면입니다.
그래서 "먹었다"는 것과 "몸에 들어왔다"는 것은 전혀 다른 사건입니다. 흡수되지 않으면 아무리 먹어도 몸으로 들어온 게 아니에요. 소화되지 않는 식이섬유가 열량으로 잡히지 않는 이유가 이겁니다. 입으로 들어갔다가 흡수되는 일 없이 통로를 지나 나갈 뿐이에요.
④번 배설(elimination)도 짚고 갑시다. 흡수되지 않은 음식 찌꺼기를 내보내는 일입니다. 세포의 대사 과정에서 생긴 노폐물을 내보내는 배출(excretion)과는 다릅니다. 콩팥이 오줌을 만드는 일은 배출이지 배설이 아니에요. 대변은 한 번도 몸 안에 들어온 적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고, 오줌은 몸 안에서 생긴 것입니다. 오줌 생성을 다룬 글과 나란히 놓고 보면 이 차이가 선명해집니다.
소화가 필요한 첫 번째 이유 — 고분자는 막을 못 지나갑니다
세포막은 아무거나 통과시키지 않습니다. 인지질 이중층이라 크고 극성인 분자는 그냥 지나갈 수 없어요. 녹말 한 분자, 단백질 한 분자는 운반체 단백질이 처리하기에도 너무 큽니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영양소라도 고분자 상태로는 소화관 벽을 넘어올 수 없습니다. 통과할 수 있는 크기, 즉 단위체까지 잘라야 해요.
| 고분자 (못 지나감) | → 단위체 (지나감) |
|---|---|
| 녹말·글리코젠 등 다당류 | 포도당 등 단당류 |
| 단백질 | 아미노산 |
| 중성지방 | 지방산 + 모노글리세라이드 |
| 핵산(DNA·RNA) | 뉴클레오타이드 |
두 번째 이유 — 남의 단백질은 남의 설계도로 만들어졌습니다
이쪽이 더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단백질의 기능은 아미노산 서열이 정합니다. 그 서열은 그 생물의 유전자에 적혀 있어요. 소의 근육 단백질은 소의 유전자가 지정한 서열로 접혀 있습니다. 그 분자를 통째로 내 몸에 가져다 놓아 봐야 내가 필요한 단백질이 아니에요. 소의 효소는 소의 대사에 맞춰져 있고, 소의 헤모글로빈은 소의 산소 요구에 맞춰져 있습니다.
게다가 남의 단백질이 분해되지 않은 채로 몸에 들어오면 면역계가 이물질로 인식합니다. 식품 알레르기의 상당수가 완전히 분해되지 않은 단백질 조각에서 시작해요.
그래서 동물은 이 전략을 씁니다.
남의 고분자를 단위체까지 완전히 부순다 → 그 단위체로 내 설계도대로 다시 짓는다
아미노산에는 출신 표시가 없습니다. 소에서 온 류신이든 콩에서 온 류신이든 완전히 같은 분자예요. 정보는 버리고 부품만 가져오는 것 — 이게 소화의 본질입니다. 레고를 통째로 물려받는 게 아니라 낱개 블록으로 뜯어서 내 설명서대로 다시 쌓는 거죠.
화학적 소화는 전부 가수분해입니다
어떻게 부술까요? 방법은 하나입니다. 가수분해(hydrolysis)예요.
고분자를 만들 때는 단위체 사이에서 물 한 분자를 빼며 결합을 만들었습니다(탈수 축합). 부술 때는 그 반대로 물 한 분자를 넣어 결합을 끊습니다. 소화효소는 예외 없이 이 반응을 촉매해요. 아밀레이스도, 펩신도, 라이페이스도 전부 가수분해효소입니다.
그런데 가수분해는 활성화에너지 장벽 때문에 저절로는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녹말을 물에 담가 둔다고 며칠 만에 포도당이 되지 않죠. 효소가 그 장벽을 낮춰 주기 때문에 체온에서 몇 시간 만에 끝나는 겁니다. 소화효소가 하는 일은 새로운 반응을 만드는 게 아니라, 원래 일어날 반응을 쓸 만한 속도로 끌어올리는 것뿐이에요.
한 가지 더 구분해 둡시다.
- 기계적 소화 — 씹기, 위의 휘젓기처럼 물리적으로 잘게 부수는 것. 결합은 끊지 않습니다. 대신 덩어리를 쪼개서 표면적을 넓혀 효소가 달라붙을 자리를 늘립니다.
- 화학적 소화 — 효소가 결합을 끊는 것. 분자의 종류가 실제로 바뀝니다.
둘은 경쟁이 아니라 협력 관계예요. 기계적 소화가 표면적을 만들어 주면 화학적 소화의 속도가 올라갑니다. 이 "표면적 = 속도"라는 논리는 이 챕터에서 계속 반복됩니다. 쓸개즙의 유화도, 소장의 융털도 결국 같은 논리예요.
그런데 왜 내 몸은 안 소화될까 — 구획화
여기서 문제가 하나 생깁니다. 단백질을 자르는 효소를 몸이 만든다면, 그 효소는 왜 나를 자르지 않습니까? 내 세포도 단백질로 돼 있는데요.
답은 구획화(compartmentalization)입니다. 소화효소를 세포의 나머지 부분과 격리된 공간에 가둬 두고, 거기서만 일하게 하는 거예요. 이 원리가 동물의 소화 방식 전체를 결정합니다.
세포내 소화(intracellular digestion). 가장 단순한 방식입니다. 세포가 음식 입자를 식세포작용으로 통째로 삼켜 식포를 만들고, 거기에 소화효소가 든 리소좀이 융합합니다. 효소는 리소좀과 식포 안에만 있으니 세포질은 안전해요. 격리된 공간은 세포 안의 막 주머니입니다. 해면동물은 소화를 거의 전적으로 이 방식에 의존합니다.
한계가 분명합니다. 세포가 삼킬 수 있는 크기의 먹이만 먹을 수 있어요. 이 방식만으로는 큰 먹이를 먹지 못합니다.
세포외 소화(extracellular digestion). 그래서 대부분의 동물은 다른 길을 갑니다. 몸 안에 바깥과 이어진 빈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으로 효소를 분비해서 거기서 먹이를 분해하는 거예요. 격리된 공간이 세포 안이 아니라 몸 안의 통로로 바뀐 겁니다. 이러면 세포보다 큰 먹이도 먹을 수 있어요. 분해된 단위체를 그다음에 세포가 흡수하면 됩니다.
세포외 소화를 하는 공간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고, 그 차이가 이 글의 마지막 주제입니다.

'먹었다'와 '몸에 들어왔다'는 다른 사건이다 — 소화관 속은 위상학적으로 몸의 바깥 — 송쌤생명과학 자체 제작
구멍이 하나인 소화 공간 — 위수강
위수강(gastrovascular cavity)은 입구와 출구가 같은 구멍 하나인 소화 공간입니다. 히드라·해파리 같은 자포동물, 플라나리아 같은 편형동물이 가지고 있어요.
이름을 뜯어보면 기능이 보입니다. '위(gastro)'와 '혈관(vascular)'이 붙어 있죠. 소화와 운반을 한 공간이 겸한다는 뜻이에요. 이 동물들은 따로 순환계가 없습니다. 위수강이 몸 곳곳으로 가지를 뻗어 있어서, 분해된 영양소가 그 가지를 통해 몸 전체에 가까이 닿습니다. 플라나리아가 납작하고 위수강이 잘게 갈라진 이유가 여기 있어요. 순환계 없이 확산만으로 닿으려면 모든 세포가 소화 공간 가까이 있어야 하니까요.
작동 방식도 봅시다. 히드라는 촉수로 먹이를 잡아 입으로 넣고, 위수강으로 소화효소를 분비해 잘게 분해합니다(세포외 소화). 그다음 위수강을 둘러싼 세포들이 조각을 삼켜 안에서 마저 분해해요(세포내 소화). 두 방식을 함께 씁니다. 그리고 소화가 끝나면 남은 찌꺼기를 들어온 그 입으로 다시 내보냅니다.
여기서 한계가 드러납니다.
- 동시에 먹고 배출할 수 없다 — 찌꺼기를 내보내는 동안 새 먹이를 받을 수 없습니다.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가능해요.
- 들어온 것과 나갈 것이 섞인다 — 방금 삼킨 먹이와 다 쓰고 남은 찌꺼기가 같은 공간에 있습니다.
- 부위별로 특화할 수 없다 — 공간이 하나뿐이니 pH도 하나, 효소 조합도 하나입니다.
구멍이 둘인 소화 공간 — 소화관
소화관(alimentary canal)은 입과 항문, 두 개의 구멍을 가진 관입니다. 지렁이·곤충·척추동물을 포함해 대부분의 동물이 이 구조예요. 음식이 한 방향으로만 흐릅니다.
구멍 하나가 더 생긴 것뿐인데, 이 차이가 만드는 이점이 큽니다.
| 위수강 (구멍 1개) | 소화관 (구멍 2개) | |
|---|---|---|
| 흐름 | 양방향(들어온 곳으로 나감) | 한 방향 |
| 동시 처리 | 불가 — 한 번에 한 끼 | 가능 — 여러 끼가 각 구간에 동시에 |
| 부위별 특화 | 어려움 — 공간이 하나 | 가능 — 구간마다 다른 pH·효소 |
| 순환계 | 대개 없음(위수강이 겸함) | 있음 — 흡수한 영양소를 혈액이 운반 |
두 번째 줄이 연속 처리의 이점입니다. 공장의 컨베이어벨트와 같아요. 한 덩어리가 끝까지 가기를 기다릴 필요 없이, 아침에 먹은 것이 소장에 있는 동안 점심에 먹은 것이 위로 들어옵니다. 처리량이 훨씬 커집니다.
세 번째 줄이 구획화의 이점이고, 이게 더 중요합니다. 효소는 저마다 최적 pH가 다릅니다. 공간이 하나뿐이면 pH를 하나로 정해야 하니, 그 pH에서 잘 듣는 효소만 쓸 수 있어요. 그런데 구간을 나누면 위는 강한 산성, 소장은 약한 염기성처럼 구간마다 조건을 따로 맞출 수 있습니다. 서로 조건이 충돌하는 효소들을 순서대로 다 쓸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이 조립 라인을 실제로 따라가는 것이 다음 글의 내용입니다.
쌤 한마디 — 시험에서 가장 흔한 실수 세 개를 미리 막아 둡시다. 첫째, 위수강이 있는 동물이 소화를 못 하는 게 아닙니다. 위수강도 엄연히 세포외 소화를 하는 소화 공간이에요. 구조가 단순할 뿐 기능이 없는 게 아닙니다. 둘째, 배설과 배출을 섞지 마세요. 대변은 배설, 오줌은 배출입니다. 셋째, 기계적 소화를 "소화가 아니다"라고 쓰면 감점입니다. 결합을 끊지 않을 뿐 엄연히 소화 과정이에요. 서술형에서 소화의 필요성을 물으면 "고분자는 세포막을 통과할 수 없고, 다른 생물의 고분자는 그 생물의 유전정보대로 만들어져 그대로 쓸 수 없으므로" 두 가지를 모두 쓰세요. 하나만 쓰면 반만 받습니다.
정리하면
음식 처리는 섭취 → 소화 → 흡수 → 배설 네 단계입니다. 이 중 물질이 실제로 몸 안으로 들어오는 단계는 흡수뿐이에요. 소화관 안은 도넛의 구멍처럼 위상학적으로 몸의 바깥입니다.
소화가 필요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고분자는 세포막을 통과하지 못하고, 다른 생물의 고분자는 그 생물의 유전정보로 만들어져 그대로 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단위체까지 부순 다음 내 설계도로 다시 짓습니다. 화학적 소화는 전부 가수분해이고, 기계적 소화는 표면적을 넓혀 그 속도를 올립니다.
자기 몸이 소화되지 않는 비결은 구획화예요. 효소를 리소좀 안에 가두면 세포내 소화, 몸 안의 빈 공간으로 분비하면 세포외 소화입니다. 그 공간이 구멍 하나짜리면 위수강, 둘짜리면 소화관이고, 구멍이 둘일 때 연속 처리와 부위별 특화가 가능해집니다.
그 부위별 특화가 사람의 몸에서 실제로 어떻게 구현돼 있는지 — 어느 자리에서 어떤 효소가 무엇을 어디까지 자르는지 — 를 다음 글 부위별 소화효소에서 표로 정리하겠습니다. 이 챕터에서 암기량이 가장 많은 부분이지만, 위에서 본 구획화라는 논리 하나로 상당 부분이 설명됩니다.
틀린 내용이나 더 궁금한 점이 있으면 문의하기로 알려 주세요. 확인한 뒤 고치고, 고친 날짜를 위에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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