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자 — 물 없이 번식하기 위한 장치
송준호(송쌤)송쌤생명과학입시연구소 대표
앞 글에서 양치식물을 보면서 한 가지가 계속 걸렸을 겁니다. 양치식물은 관다발이 있고, 뿌리도 있고, 줄기도 잎도 있습니다. 키도 큽니다. 육상 생활에 필요한 건 다 갖춘 것처럼 보여요. 그런데도 양치식물은 축축한 그늘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몸이 부족한 게 아니라 번식이 물에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포자가 떨어져 자란 전엽체는 땅바닥에 납작하게 붙은 작은 조직이고, 그 위에서 만들어진 정자는 헤엄쳐서 난자에게 갑니다. 물막이 없으면 그 몇 밀리미터를 건너지 못해요.
이 족쇄를 푸는 과정이 Ch.30의 전체 줄거리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두 개의 발명으로 나뉩니다. 하나가 종자, 다른 하나가 꽃가루예요. 오늘은 앞의 것을 봅니다.
종자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나
종자는 배 + 저장양분 + 씨껍질 세 부분으로 된 구조물입니다. 이 세 개를 외우라는 게 아니라, 각각이 무슨 일을 하는지가 오늘 글의 뼈대입니다.
| 부분 | 정체 | 하는 일 |
|---|---|---|
| 배 | 수정으로 생긴 어린 포자체(2n) | 자라서 식물 본체가 된다 — 이미 다세포다 |
| 저장양분 | 겉씨식물은 자성 배우체 조직(n), 속씨식물은 배젖(3n) | 싹이 광합성을 시작할 때까지 먹고 버틸 도시락 |
| 씨껍질(종피) | 배주를 싸고 있던 보호층이 단단해진 것 (모체 유래, 2n) | 건조·물리적 손상·소화를 견딘다 |
세 번째 줄을 눈여겨봐 두세요. 종피는 배에서 생긴 게 아니고 어미 식물의 조직입니다. 그래서 종자 하나 안에 유전적으로 서로 다른 세대가 겹쳐 들어 있어요. 포장은 엄마가 해 주고, 안에 든 건 자식입니다. 이 구분은 중복수정 편에서 배젖의 3n을 다룰 때 다시 결정적으로 쓰입니다.
포자와 종자는 어디서 결정적으로 갈리나
둘 다 "흩어져서 새 개체가 되는 단위"라서 같은 급으로 보기 쉬운데, 사실 차원이 다릅니다. 핵심은 하나예요. 포자는 세포 하나고, 종자는 아기 식물이 도시락을 지고 들어앉은 꾸러미입니다.
| 구분 | 포자 | 종자 |
|---|---|---|
| 구조 | 한 세포 | 다세포 배 + 양분 + 껍질 |
| 핵상 | n (반수체) | 배는 2n |
| 만들어지는 과정 | 포자체에서 감수분열로 | 수정 뒤에 배주가 발달해서 |
| 발아하면 무엇이 되나 | 배우체 | 포자체(식물 본체)가 이어서 자란다 |
| 지고 가는 양분 | 거의 없다 | 있다 |
| 발아 조건 | 닿은 자리가 습하면 바로 | 조건을 따져서 고를 수 있다 — 휴면 |
제가 수업하면서 보면 네 번째 줄을 틀리는 학생이 가장 많습니다. 포자가 발아해서 큰 식물이 되는 그림을 머리에 넣어 두고 있는 거예요. 아닙니다. 포자가 발아하면 배우체, 즉 전엽체 같은 작고 짧게 사는 단계가 나옵니다. 그 배우체가 정자와 난자를 만들고, 수정이 끝난 다음에야 우리가 식물이라고 부르는 포자체가 자라죠. 이 순서가 헷갈리면 세대교번 전체가 무너집니다.
그런데 종자는 그 긴 과정을 이미 다 끝낸 상태로 흩어집니다. 배우체도 만들었고, 정자와 난자도 만났고, 수정도 끝났습니다. 흩어질 때는 다음 세대의 몸이 벌써 들어 있어요. 포자가 "출발선에서 출발"이라면 종자는 "이미 몇 바퀴 돌고 난 상태에서 출발"입니다.
배주가 종자가 된다
이 대응을 정확히 잡아 두면 Ch.30의 절반이 해결됩니다. 배주는 수정 전의 구조, 종자는 수정 후의 같은 구조입니다. 완전히 다른 두 물건이 아니라, 같은 자리가 이름을 바꾼 겁니다.
배주를 분해해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 대포자낭 — 안에서 감수분열이 일어나 대포자가 만들어지는 조직
- 대포자 → 자성 배우체 — 대포자가 밖으로 나가지 않고 대포자낭 안에 그대로 머문 채 자라서 몇 개 세포짜리 배우체가 되고, 그 안에 난세포가 생긴다
- 인피 — 이 전체를 겉에서 싸고 있는 어미 식물의 보호층
여기서 수정이 일어나면 자리별로 이렇게 바뀝니다.
| 수정 전 (배주) | 수정 후 (종자) |
|---|---|
| 난세포(n) | 배(2n) |
| 자성 배우체 조직 또는 수정 산물 | 저장양분 |
| 인피 | 종피 |
| 배주 전체 | 종자 전체 |
그리고 두 번째 줄에서 겉씨식물과 속씨식물이 갈라집니다. 겉씨식물은 자성 배우체 조직이 그대로 양분 창고가 되고, 속씨식물은 수정의 결과로 배젖이 새로 만들어집니다. 그 차이가 왜 결정적인지는 다섯 번째 글에서 숫자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쌤 한마디 — 서술형에서 "종자의 형성 과정을 쓰라"는 문제가 나오면 "배주가 발달하여 종자가 되고, 그 안의 난세포가 수정되어 배가 된다"는 문장을 축으로 삼으세요. "배주 → 종자"라는 대응 하나만 정확히 쓰면 나머지는 거기 붙여 가면 됩니다. 반대로 이걸 "씨방 → 종자"로 쓰면 그 줄에서 바로 깎입니다. 씨방이 자라면 종자가 아니라 열매예요.
휴면 — 시기를 고를 수 있게 되었다
종자가 가져온 것 중 시험에서 가장 자주 과소평가되는 게 휴면입니다. 휴면은 종자가 대사 활동을 거의 멈춘 채로, 조건이 맞을 때까지 기다리는 상태입니다.
이게 왜 그렇게 큰 변화일까요. 포자를 생각해 보세요. 포자도 건조를 꽤 잘 견딥니다. 그런데 포자는 습한 자리에 떨어지면 거기서 바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 자리가 다음 주에 말라붙을 자리인지 아닌지를 따질 수 없어요.
종자는 따집니다. 종자의 발아에는 보통 조건이 걸려 있습니다.
- 충분한 수분을 흡수했는가
- 온도가 발아에 적절한 범위인가 — 겨울 추위를 한 번 겪어야 깨는 종자도 많습니다
- 빛 조건이 맞는가 — 땅속 깊이 묻힌 상태에서는 깨지 않는 쪽이 유리하죠
- 종피가 물리적으로 약해졌는가 — 산불의 열, 동물의 소화관 통과로 비로소 깨지는 종자도 있습니다
조건을 다 따진다는 건 불리한 시기를 통째로 건너뛸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사막 식물의 종자가 몇 년씩 흙 속에 그대로 있다가 큰비가 온 해에만 한꺼번에 깨어 꽃밭을 만드는 게 그래서예요. 그 몇 년 동안 식물 본체는 거기 없었습니다. 종자가 시간을 건너 준 겁니다.
학생이 여기서 자연스럽게 묻습니다. "그럼 종자는 공간만 이동하는 게 아니라 시간도 이동하는 건가요?" 정확한 표현입니다. 포자는 공간만 옮깁니다. 종자는 공간과 시간을 둘 다 옮깁니다.

포자는 공간만 옮기고, 종자는 시간까지 옮긴다 — 송쌤생명과학 자체 제작
세대교번에서 벌어진 일 — 배우체가 안으로 들어간다
이제 오늘 글에서 제일 중요한 흐름입니다. 세대교번의 세 가지 유형을 배울 때 식물은 포자체(2n)와 배우체(n)가 번갈아 나오는 생활사를 가진다고 했어요. 육상식물의 진화를 이 비율의 변화로 읽으면 한 줄로 정리됩니다.
| 무리 | 우세한 세대 | 배우체의 상태 | 물이 필요한가 |
|---|---|---|---|
| 선태식물 | 배우체 | 크고 독립생활 — 우리가 보는 이끼가 배우체 | 필요 |
| 종자 없는 관다발식물 | 포자체 | 작지만 따로 떨어져 독립생활(전엽체) | 필요 |
| 종자식물 | 포자체 | 몇 개 세포로 축소, 포자체 조직 안에서 보호·영양을 받는다 | 필요 없다 |
세 번째 줄이 종자식물의 정체입니다. 배우체가 계속 작아지다가 결국 독립생활을 포기하고 포자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자성 배우체는 배주 안에서 평생 나오지 않고, 수배우체는 꽃가루라는 형태로 포장돼 운반됩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물이 필요 없어집니다. 배우체가 땅바닥에 노출된 작은 조직이 아니라 어미 조직 안에 들어앉아 있으면, 마를 걱정도 없고 난세포가 말라붙을 걱정도 없어요. 정자를 물에 띄워 보낼 필요도 없습니다. 그 정자를 어떻게 배달하는지가 다음 글의 주제입니다.
이 축소의 흐름을 하나만 기억하면 됩니다. 포자체는 커지고, 배우체는 작아지면서 안으로 들어간다. 육상 진출의 적응에서 본 큐티클·기공·관다발이 "몸을 마르지 않게 하는" 적응이었다면, 종자는 "번식을 마르지 않게 하는" 적응입니다.
언제, 그리고 얼마나 성공했나
화석 기록으로 보면 종자를 가진 식물은 약 3억 6천만 년 전, 데본기 후기쯤에 처음 나타납니다. 처음 등장한 무리는 지금은 다 사라졌고, 뒤에 겉씨식물과 속씨식물이 이어받았어요.
결과만 말하면 압도적입니다. 현존하는 육상식물 가운데 종자식물이 약 30만 종으로 대다수를 차지하고, 우리가 먹는 거의 모든 작물, 목재로 쓰는 거의 모든 나무가 종자식물입니다. 반면 종자 없는 관다발식물은 약 1만 2천 종 수준이에요. 같은 시간을 살아왔는데 종 수가 한참 벌어졌습니다.
후속 질문 — 그럼 양치식물은 왜 아직 살아 있나
종자가 그렇게 유리하다면 양치식물은 벌써 밀려 사라졌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안 사라졌어요. 온대·열대의 숲 바닥, 바위틈, 나무 줄기 위에 여전히 많습니다.
답은 간단합니다. 종자가 유리한 건 건조하고 변덕스러운 환경에서입니다. 늘 축축한 숲 바닥이라면 번식에 물이 필요하다는 게 불리하지 않아요. 오히려 양치식물은 아주 가볍고 작은 포자를 어마어마한 수로 뿌려서, 바위틈이나 쓰러진 나무 같은 작은 빈 자리를 빠르게 선점하는 데 능합니다.
이건 종간 상호작용 편의 논리 그대로입니다. 어느 형질이 "더 좋은" 형질인 게 아니라, 환경마다 유리한 형질이 다릅니다. 진화를 사다리가 아니라 환경에 대한 응답으로 읽는 훈련을 여기서도 하면 좋겠습니다.
여기서 제일 많이 틀립니다
- 종자를 "커진 포자"로 생각한다 — 완전히 다른 층위입니다. 포자는 감수분열의 산물인 한 세포(n), 종자는 수정의 산물인 배(2n)를 품은 다세포 구조물입니다. 종자 형성에는 수정이 반드시 들어가고, 포자 형성에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 종자 전체가 2n이라고 쓴다 — 종자 안에는 핵상이 다른 세 부분이 섞여 있습니다. 배는 2n, 종피는 모체 유래 2n, 저장양분은 겉씨식물에서 n이고 속씨식물에서 3n입니다. "종자의 핵상은?"이라는 질문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어야 합니다.
- "씨방이 종자가 된다"고 쓴다 — 배주가 종자, 씨방이 열매입니다. 이름이 비슷해서 자리가 바뀌는 경우가 정말 많아요. 그리고 씨방은 속씨식물에만 있으므로, 겉씨식물에는 열매가 없습니다.
- 종자식물에는 포자가 없다고 생각한다 — 있습니다. 종자식물도 감수분열로 포자를 만들어요. 다만 그 포자가 밖으로 흩어지지 않고 안에서 바로 배우체로 자랍니다. 흩어지는 단위가 포자에서 꽃가루와 종자로 바뀐 것이지, 포자 단계 자체가 사라진 게 아닙니다.
- 배우체가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 작아지고 숨은 것이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꽃가루가 수배우체이고, 배주 안의 조직이 자성 배우체입니다. 이 이름 짝을 다음 글에서 확실히 못 박겠습니다.
- 휴면을 "죽어 있는 상태"로 이해한다 — 살아 있습니다. 대사 속도를 극단적으로 낮춘 상태예요. 그래서 조건이 맞으면 깨어납니다.
정리하면
종자는 배(2n) + 저장양분 + 씨껍질로 된 구조물이고, 수정이 끝난 배주가 발달해서 만들어집니다. 흩어지는 시점에 이미 다음 세대의 몸과 먹을 것과 보호막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세포 하나로 떠나는 포자와는 차원이 다른 번식 단위예요.
종자 덕분에 식물은 휴면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조건을 따져서 발아 시기를 고를 수 있고, 불리한 계절이나 몇 년의 가뭄을 통째로 건너뛸 수 있습니다. 공간만 옮기는 포자와 달리 종자는 시간도 옮깁니다.
그리고 세대교번의 흐름에서 보면 종자식물은 배우체가 포자체 안으로 들어간 식물입니다. 배우체가 외부에 노출되지 않으니 마를 위험이 사라지고, 번식이 물에서 풀려나기 시작합니다.
다만 아직 절반입니다. 난세포는 배주 안에 안전하게 들어앉았는데, 정자는 어떻게 거기까지 가나요? 물속을 헤엄치는 방식으로는 배주 안까지 들어갈 수 없습니다. 다음 글에서 그 답을 봅니다. 식물은 정자를 헤엄치게 하는 대신, 정자를 품은 배우체 자체를 포장해서 바람에 실어 보내는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틀린 내용이나 더 궁금한 점이 있으면 문의하기로 알려 주세요. 확인한 뒤 고치고, 고친 날짜를 위에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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