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태식물 — 배우체가 주인인 몸
송준호(송쌤)송쌤생명과학입시연구소 대표
길가 담벼락이나 축축한 바위에 초록색으로 깔린 이끼, 누구나 봤을 겁니다. 그런데 그 초록색 덩어리가 무엇인지 정확히 말할 수 있는 학생은 많지 않습니다.
답부터 말하겠습니다. 그 초록색 몸은 배우체입니다. n입니다. 앞 글에서 세대교번을 정리했는데, 선태식물은 그 두 몸 중 배우체가 주인인 유일한 무리예요. 우리가 평소 식물의 몸이라고 생각하는 2n 포자체는, 여기서는 배우체 등에 얹혀 사는 작은 구조물입니다.
이 역전 하나만 제대로 붙들면 이 글의 나머지는 다 따라옵니다.
세 무리 — 우산이끼, 뿔이끼, 솔이끼
선태식물은 관다발이 없는 육상식물을 묶어 부르는 이름이고, 크게 세 무리입니다.
- 우산이끼류 — 배우체가 납작한 잎사귀처럼 땅에 붙어 자랍니다. 번식 구조가 작은 우산이나 접시 모양으로 솟아올라서 그 이름이 붙었어요. 중학교 교과서에서 민꽃식물의 대표로 자주 등장합니다.
- 뿔이끼류 — 포자체가 가늘고 긴 뿔처럼 위로 뻗습니다. 세 무리 중 가장 종 수가 적어 눈에 덜 띕니다.
- 솔이끼류 — 우리가 "이끼"라고 할 때 떠올리는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가느다란 줄기에 작은 잎 같은 구조가 촘촘히 붙어 있고, 여럿이 모여 방석처럼 덩어리를 이룹니다.
이 세 무리의 관계가 정확히 어떻게 갈라지는지는 연구에 따라 조금씩 달리 제시됩니다. 그래서 "선태식물"이라는 이름을 하나의 완전한 가지로 보기보다는 관다발이 없다는 공통점으로 묶인 묶음으로 이해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계통수 읽기에서 다룬 측계통군 문제와 같은 상황이에요.
배우체의 몸 — 뿌리도 줄기도 잎도 아니다
이끼 배우체를 자세히 보면 식물처럼 생긴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름을 함부로 붙이면 안 됩니다.
땅이나 바위에 몸을 고정하는 가느다란 실 모양 구조를 헛뿌리라고 부릅니다. 이름에 "헛"이 붙은 이유가 중요해요. 헛뿌리는 몸을 붙들어 두는 역할이 주된 기능이고, 관다발이 없습니다. 뿌리처럼 물을 적극적으로 끌어올려 멀리 보내는 기관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솔이끼의 잎처럼 생긴 부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관다발이 지나가지 않으므로 우리가 아는 "잎"과는 다른 구조이고, 대부분 세포 한두 겹으로 아주 얇습니다. 얇은 이유가 있어요. 물이 세포에서 세포로 그냥 스며들어 가야 하니까 몸이 두꺼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끼는 몸 표면 전체로 물을 흡수합니다. 비가 오면 몸 전체가 흠뻑 젖고, 마르면 전체가 마릅니다. 운송망이 없으니 몸 어디든 환경과 직접 접촉해야 하는 설계입니다.
포자체는 배우체 위의 세입자다
이제 2n 쪽을 봅시다.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끼의 포자체는 배우체에서 떨어져 나오지 않습니다. 배우체의 장란기 안에서 수정이 일어나고, 그 접합자가 거기서 그대로 자라 올라와 가느다란 자루와 그 끝의 주머니를 만듭니다. 구조를 셋으로 나눠 보면 이렇습니다.
- 발 — 배우체 조직 속에 박혀 있는 부분입니다. 여기로 물과 양분을 받습니다.
- 자루 — 포자 주머니를 위로 들어 올리는 가느다란 대입니다. 높이 들어 올려야 포자가 바람을 타니까요.
- 포자낭(삭) — 끝에 달린 주머니입니다. 안에서 감수분열이 일어나 포자가 만들어집니다.
발이라는 이름을 그냥 넘기지 마세요. 포자체는 광합성으로 자기 양분을 다 충당하지 못하고, 배우체에 영양적으로 의존합니다. 세대교번의 두 몸 중 한쪽이 다른 쪽에 붙어 사는 상태 — 이것이 선태식물을 정의하는 특징입니다.
그리고 포자체는 오래 살지 않습니다. 포자를 다 날려 보내면 역할이 끝나 말라 죽어요. 배우체는 계속 살아 있고, 다음 해에 다시 포자체를 올립니다. 어느 쪽이 주인인지가 분명합니다.
솔이끼 포자낭의 설계가 영리합니다. 포자낭 끝에는 뚜껑이 있고, 그 뚜껑이 떨어지면 아래에 톱니처럼 생긴 구조가 드러납니다. 이 톱니는 습도에 따라 모양이 변해서, 건조할 때 벌어지고 습할 때 닫힙니다. 왜 그래야 할까요? 비가 오거나 습한 날에 포자를 뿌리면 그 자리에 떨어지고 끝납니다. 공기가 건조한 날에 뿌려야 멀리 날아가죠. 물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생물이, 포자를 날릴 때만은 마른 날을 기다립니다.
왜 그렇게 작은가 — 두 가지 제약
이끼의 키는 대체로 몇 센티미터 수준입니다. 이유가 둘인데, 한 가지만 쓰면 감점입니다.
첫째, 물을 위로 올릴 수단이 없습니다. 물관이 없으니 물은 확산과 모세관 현상 정도로만 움직입니다. 몇 센티미터를 넘어가면 윗부분까지 물이 가지 않아요. 일부 솔이끼류에는 물을 전달하는 세포가 있지만, 리그닌으로 보강된 본격적인 관다발과는 수준이 다릅니다.
둘째, 몸을 세울 수단이 없습니다. 리그닌으로 보강된 조직이 없으므로 몸이 자기 무게를 버티지 못합니다. 그래서 위로 솟기보다 땅에 깔려 퍼지는 쪽으로 자랍니다.
그런데 이 "깔려 퍼지는" 방식이 단점만은 아닙니다. 이끼가 방석처럼 빽빽하게 모여 자라는 데는 이유가 있어요. 서로 몸을 붙이고 있으면 사이에 물이 머물고, 바람에 마르는 것도 늦어집니다. 혼자서는 못 하는 일을 밀집해서 해결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머금은 물이 다음 문제의 해결책이 됩니다.
수정에 물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끼의 정자는 편모를 가지고 헤엄칩니다. 육상 적응 네 가지에서 네 번째 문제로 꼽았던 그 상태 그대로예요.
그래서 수정은 이렇게 일어납니다. 비가 와서 몸 표면에 물막이 생기면, 장정기에서 나온 정자가 그 물을 타고 헤엄쳐 다른 개체의 장란기로 들어갑니다. 이동할 수 있는 거리는 길어도 수 센티미터 수준입니다.
결론이 바로 따라옵니다. 이끼는 물이 있어야 번식합니다. 그리고 가까이 모여 있어야 번식합니다. 이끼가 축축한 그늘에 밀집해 사는 것은 취향이 아니라 조건이에요.
여기서 중요한 논리 하나를 짚고 가겠습니다. 수정에 물이 필요하다는 것은 포자가 멀리 날아가는 것과 모순되지 않습니다. 포자는 바람에 실려 수백 미터, 수 킬로미터도 갑니다. 포자가 간 곳에서 자란 배우체들이 그 자리에 모여 살면서 비가 올 때 수정을 하는 거예요. 확산은 포자가 담당하고, 수정은 물이 담당합니다. 역할이 분리돼 있습니다.

여기서는 우리가 큰 쪽이 배우체다 — 송쌤생명과학 자체 제작
그런데 왜 이렇게 널리 퍼졌을까
작고, 물에 의존하고, 관다발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끼는 남극 주변부터 열대 우림, 사막의 그늘진 틈새까지 사실상 모든 대륙에 있습니다. 어떻게 그럴까요? 이 질문이 이 글에서 제일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 마르는 것을 견딘다. 이게 가장 큰 무기입니다. 많은 이끼가 몸의 수분을 거의 다 잃고 바싹 마른 상태로 긴 시간을 버티다가, 물을 만나면 몇 분에서 몇 시간 안에 광합성을 재개합니다. 큰 관다발식물은 이 정도로 마르면 죽습니다. 이끼는 "마르지 않게 버티는" 전략 대신 "말라도 죽지 않는" 전략을 택한 셈이에요.
- 포자가 작고 튼튼하고 많다. 포자낭 하나에서 엄청난 수의 포자가 나오고, 스포로폴레닌 벽 덕분에 공기 중에서도 오래 버팁니다. 수가 많고 가볍다는 것만으로 먼 거리를 건널 확률이 올라갑니다.
- 흙이 없어도 된다. 큰 식물이 뿌리를 뻗을 수 없는 맨바위, 콘크리트, 나무껍질에도 헛뿌리로 붙어 자랍니다. 그래서 이끼는 아무것도 없는 땅에 가장 먼저 들어가는 개척자 역할을 합니다. 이끼가 자리를 잡고 유기물을 쌓으면 그 위에 다른 식물이 들어올 토양이 생겨요.
- 경쟁을 피한다. 키 경쟁에서는 이길 수 없지만, 큰 식물이 못 사는 자리는 많습니다. 추운 곳, 양분이 거의 없는 곳, 바위 틈, 나무 그늘. 그런 틈새를 차지하는 전략으로 충분히 번성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첫 번째 항목을 눈여겨보세요. "작은 것이 열등한 것은 아니다"는 이 챕터의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관다발식물이 등장한 뒤에도 이끼가 사라지지 않은 것은, 진화에 방향이나 순위가 없고 환경마다 유리한 전략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물이끼와 이탄 — 작은 식물이 가진 큰 영향력
선태식물의 생태적 비중을 보여 주는 가장 극적인 예가 물이끼입니다. 북반구 고위도의 광대한 습지를 덮고 있는 이끼인데, 이 습지의 환경이 특이합니다. 차고, 산성이고, 산소가 적습니다.
이런 조건에서는 분해를 담당하는 미생물이 제대로 활동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죽은 이끼가 분해되지 않고 그대로 쌓입니다. 수천 년에 걸쳐 쌓인 그 유기물 층이 이탄입니다.
여기서 탄소 순환이 걸립니다. 광합성으로 대기에서 뽑아낸 탄소가 분해되어 돌아가지 못하고 땅에 갇히는 것 — 이탄 습지는 지구에서 가장 큰 육상 탄소 저장고 중 하나입니다. 키가 몇 센티미터인 식물이 전 지구 탄소 균형에 관여하고 있는 셈이에요.
그리고 이 "분해되지 않는" 성질 때문에 이탄 습지에서는 수천 년 전 사람의 시신이 피부와 머리카락까지 남은 상태로 발견되는 일이 있습니다. 냉장고도 아닌 늪이 유기물을 보존한 거죠. 이탄 습지를 말려 개발하면 갇혀 있던 탄소가 다시 분해되어 대기로 나가기 때문에, 이탄지 보전이 기후 문제에서 따로 다뤄지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쌤 한마디 — 선태식물에서 외울 건 사실 한 문장입니다. "배우체가 크고 오래 살고, 포자체가 배우체에 붙어서 양분을 받는다." 시험에 나오는 거의 모든 선지가 이 문장의 변형이에요. 그리고 이 문장을 외울 때 반대로 적어 보는 연습을 한 번 하세요. 양치식물부터는 포자체가 크고 배우체가 작고 독립적입니다. 둘을 한 쌍으로 묶어서 "이끼는 배우체 우세 + 포자체 의존 / 양치는 포자체 우세 + 배우체 독립"까지 한 호흡에 나오면 이 챕터 절반이 해결됩니다. 참고로 "이끼는 관다발이 없어서 작다"만 쓰면 반만 쓴 거예요. 물을 올릴 수단이 없는 것과 몸을 세울 수단이 없는 것, 둘 다 써야 완성입니다.
여기서 제일 많이 틀립니다
네 가지만 짚겠습니다.
초록색 이끼 덩어리를 포자체로 쓰는 것. 배우체입니다. 포자체는 그 위로 솟은 가느다란 자루와 끝의 주머니예요.
헛뿌리를 뿌리로 쓰는 것. 관다발이 없고, 몸을 고정하는 것이 주된 역할입니다. 흡수를 전담하는 기관도 아니고 물을 멀리 보내지도 않습니다.
"이끼는 육상식물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것. 엄연한 육상식물입니다. 큐티클도 있고(우산이끼류를 뺀 무리에는 기공도 있고), 포자에 스포로폴레닌 벽이 있고, 배를 어미 몸에 붙들어 둡니다. 관다발이 없을 뿐입니다.
포자를 수정과 연결하는 것. 포자는 감수분열로 만들어져 혼자 자라 배우체가 됩니다. 수정은 그 배우체가 만든 정자와 난자 사이에서, 물막이 있을 때 따로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정리하면
선태식물은 우산이끼류·뿔이끼류·솔이끼류를 아우르는, 관다발이 없는 육상식물입니다. 가장 큰 특징은 배우체(n)가 크고 오래 살며, 포자체(2n)가 배우체에 붙어 양분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관다발과 리그닌이 없어 물을 멀리 올리지도, 몸을 세우지도 못하므로 키가 몇 센티미터에 머물고, 몸 표면 전체로 물을 흡수합니다. 수정은 편모를 가진 정자가 물막을 헤엄쳐 가야 하므로 물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래도 선태식물은 전 세계에 퍼져 있습니다. 마른 상태를 견디고 다시 살아나는 능력, 가볍고 튼튼한 포자, 맨바위에도 붙을 수 있다는 점 덕분입니다. 물이끼가 쌓여 만든 이탄 습지는 지구의 주요 탄소 저장고 중 하나입니다.
그럼 다음 질문은 분명합니다. 이 두 제약, 즉 물을 올릴 수단과 몸을 세울 수단이 생기면 식물은 어디까지 커질 수 있을까요? 답은 꽤 극적입니다. 수십 미터짜리 숲이 생기고, 그 숲이 묻혀서 오늘 우리가 캐내는 석탄이 됩니다.
관다발의 등장 — 양치식물과 석탄기의 숲에서 보겠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주인이 배우체에서 포자체로 바뀝니다.
틀린 내용이나 더 궁금한 점이 있으면 문의하기로 알려 주세요. 확인한 뒤 고치고, 고친 날짜를 위에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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