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의 증거 — 화석·상동·생물지리·분자가 같은 답을 가리킬 때
송준호(송쌤)송쌤생명과학입시연구소 대표
수업에서 다윈과 자연선택을 한 바퀴 돌고 나면 꼭 이런 질문이 나옵니다. "그건 그냥 가설 아닌가요? 몇억 년 전 일을 누가 봤다고요."
좋은 질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증거만 놓고 갑니다. 미리 한 가지 짚을게요. 가장 강력한 건 증거 하나하나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분야에서 독립적으로 얻은 증거들이 같은 답을 가리킨다는 사실입니다. 뼈를 보는 사람, 돌을 캐는 사람, 지도를 그리는 사람, 염기서열을 읽는 사람이 상의한 적이 없는데 결론이 겹칩니다.
증거 1 — 진화는 지금 눈앞에서 관찰된다
먼저 오해부터 걷어냅시다. 진화는 화석으로만 확인되는 과거의 일이 아니라 사람의 관찰 기간 안에서 측정됩니다. 가장 익숙한 사례가 항생제 내성 세균이에요. 항생제를 쓰면 감수성 세균은 죽고 우연히 내성을 가진 소수가 살아남아 번식하면서, 몇 세대 만에 집단 전체가 내성으로 갈아치워집니다. 살충제 저항성 해충도 원리가 같아요. 농약 회사가 성분을 계속 바꿔야 하는 이유가 이겁니다.
야생에서 숫자로 잡아낸 예도 있습니다. 피터·로즈메리 그랜트 부부는 갈라파고스 다프네메이저 섬의 중간땅핀치 집단을 수십 년간 개체별로 추적했어요. 1977년 극심한 가뭄으로 작고 무른 씨가 동나자, 그해 살아남은 개체는 부리가 두꺼운 쪽에 몰렸고 다음 세대의 평균 부리 크기가 약 4% 커졌습니다. 더 인상적인 건 그다음이에요. 1983년 엘니뇨로 비가 쏟아져 작은 씨가 흔해지자 이번엔 방향이 거꾸로 움직였습니다. 진화에 정해진 방향이 없다는 걸 같은 섬, 같은 종에서 보여준 셈이죠.
증거 2 — 상동: 설계가 아니라 물려받은 흔적
사람의 팔, 고양이의 앞다리, 고래의 지느러미, 박쥐의 날개를 나란히 펼쳐놓으면 뼈의 개수와 배열 순서가 같습니다. 위팔뼈 하나, 그 아래 아래팔뼈 둘, 그다음 손목뼈 무더기, 손가락뼈. 하는 일은 각각 잡기·걷기·헤엄치기·날기로 전혀 다른데 부품 목록이 동일해요.
기능만 생각하면 이럴 이유가 없습니다. 헤엄치기에 최적인 구조와 날기에 최적인 구조가 왜 같은 뼈를 같은 순서로 쓰겠습니까. 공통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하나의 구조를 각자 다르게 고쳐 쓴 것이라고 보면 그제야 설명이 됩니다. 이렇게 공통 조상에서 유래해 닮은 형질을 상동(homology)이라 합니다. 상동은 세 층위에서 나타나요.
- 구조적 상동 — 위의 척추동물 앞다리가 대표적입니다.
- 발생학적 상동 — 물고기·닭·사람의 초기 배아에는 모두 목 부위에 인두낭이라는 주머니 구조가 생깁니다. 어류에서는 아가미 지지 구조가 되고 사람에서는 귀와 목의 일부 구조로 바뀌죠. 사람 배아에는 꼬리도 잠시 생겼다 사라집니다.
- 흔적기관 — 조상에서는 쓰였지만 지금은 기능이 거의 남지 않은 구조. 고래 몸속에 떠 있는 작은 골반뼈, 날지 못하는 새의 축소된 날개, 동굴 물고기의 퇴화한 눈, 사람의 꼬리뼈가 여기 해당합니다.
가장 깊은 층위는 분자 수준의 상동입니다. 세균부터 사람까지 거의 모든 생물이 동일한 유전암호를 써요. UUU는 어디서든 페닐알라닌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인슐린 유전자를 대장균에 넣으면 대장균이 사람 인슐린을 만들어내죠. 암호표가 임의로 정해질 수 있는 것이었다면 계통마다 달라야 정상인데, 다들 같은 표를 쓴다는 건 그 표가 공통 조상에게서 한 번 정해져 그대로 내려왔다는 뜻입니다. 종끼리 아미노산 서열을 비교하면 차이의 크기가 계통 관계와 맞아떨어진다는 점도 같은 이야기인데, 이건 DNA·단백질 서열 비교 글에서 다뤘습니다.

관찰된 진화, 상동과 상사의 구분, 전이 화석의 순서 — 송쌤생명과학 자체 제작
증거 3 — 상사와 구분해야 진짜 증거가 된다
여기서 학생들이 자주 걸립니다. "닮았으면 다 친척인가요?" 아닙니다. 돌고래와 상어는 둘 다 유선형 몸에 등지느러미가 있지만 돌고래는 포유류, 상어는 연골어류로 계통상 전혀 가깝지 않아요. 물속에서 빠르게 헤엄친다는 같은 조건이 각자 독립적으로 비슷한 형태를 만든 것이고, 이걸 수렴진화, 그 결과 닮은 형질을 상사(analogy)라고 합니다. 계통을 따질 때는 반드시 둘을 갈라야 해요. 기준은 이렇습니다.
| 기준 | 상동 | 상사 |
|---|---|---|
| 닮은 이유 | 공통 조상에게서 물려받음 | 비슷한 환경에서 따로 생김(수렴진화) |
| 속 구조 | 겉모습이 달라도 기본 구조·발생 과정이 같음 | 겉모습이 닮아도 속 구조·발생 기원이 다름 |
| 기능 | 다를 수 있음 | 대체로 같음 |
| 예 | 사람 팔·고래 지느러미·박쥐 날개 | 돌고래 지느러미와 상어 지느러미, 새 날개와 곤충 날개 |
| 계통 추정에 | 쓸 수 있음 | 쓰면 안 됨 — 잘못된 계통이 나옴 |
정리하면 겉이 닮았는지가 아니라 속이 닮았는지를 봐야 한다는 겁니다.
증거 4 — 화석 기록, 특히 전이 화석
화석은 지층에 순서대로 쌓입니다. 아래 지층에는 원핵생물만 나오고, 어류 → 양서류 → 파충류 → 포유류가 등장하는 순서도 해부학적·분자적 계통 추정과 일치해요. 특히 결정적인 건 두 집단의 특징을 함께 가진 전이 화석입니다.
틱타알릭은 약 3억 7,500만 년 전 데본기 지층에서 2004년 캐나다 북극권 엘즈미어섬에서 발견됐습니다. 비늘과 아가미는 물고기인데, 머리가 납작하고 목이 있어 머리를 몸과 따로 움직일 수 있으며, 지느러미 안에 어깨·팔꿈치·손목에 해당하는 뼈가 들어 있어요. 물고기와 네발동물 사이에 정확히 걸치는 형태입니다.
고래도 잘 알려진 사례죠. 약 5,000만 년 전 파키세투스는 네 다리로 걷던 육상 포유류에 가깝고, 이후 화석으로 갈수록 뒷다리가 줄어들고 콧구멍이 머리 위로 올라갑니다. 4,000만 년 전쯤 화석에는 다 자란 개체에 쓸모없이 작은 뒷다리만 남아 있어요. 게다가 이 화석들의 발목뼈는 소·하마 같은 우제류의 특징을 그대로 갖고 있는데, 나중에 분자 서열 분석이 "고래의 가장 가까운 현생 친척은 하마"라는 답을 내놓으면서 정확히 맞아떨어졌습니다. 돌을 캐는 사람과 서열을 읽는 사람이 따로 낸 답이 같았던 거죠.
쌤 한마디 — 전이 화석을 "반은 물고기 반은 개구리" 같은 반반 생물로 상상하면 안 됩니다. 틱타알릭은 그 자체로 자기 환경에서 잘 살던 완결된 생물이었어요. 우리가 나중에 돌아보며 "이 지점이 두 집단 사이에 걸쳐 있다"고 말할 뿐입니다. 진화는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는 과정이 아니라, 매 순간 그 시점의 환경에서 살아남은 결과의 연속입니다.
증거 5 — 생물지리: 어디에 무엇이 사는가
마지막 증거는 지도에 있습니다. 생물의 분포는 기후만으로는 설명이 안 됩니다. 호주에서는 캥거루·코알라 같은 유대류가 포유류의 주류인데, 비슷한 기후대인 아프리카 초원에는 태반 포유류가 살죠. 환경이 종을 정한다면 두 곳이 비슷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답은 지질학에 있어요. 초대륙이 갈라질 때 호주가 일찍 떨어져 나가 오래 고립됐고, 그 안에서 유대류가 독자적으로 갈라졌기 때문입니다. 남아메리카와 남극 대륙에서 유대류 화석이 나오는 것도 이 시나리오와 맞습니다.
섬은 더 선명합니다. 화산섬의 고유종들은 대개 가장 가까운 대륙이나 이웃 섬의 종과 가장 닮았어요. 갈라파고스의 생물은 남아메리카 본토 종과 가깝습니다. 소수의 개체가 우연히 섬에 도달한 뒤 그곳에서 갈라졌다고 보면, 거리와 닮음의 관계가 자연스럽게 설명되죠.
정리하면
직접 관찰, 상동, 화석, 생물지리 — 네 갈래는 방법도 다르고 연구하는 사람도 다른데 결론이 하나로 모입니다. 게다가 이 증거들은 깨지기 쉬운 예측을 품고 있어요. 전이 화석은 아무 지층에서나 나오면 안 되고, 분자 계통과 화석 순서가 어긋나면 안 되며, 고유종은 가까운 땅의 종과 닮아야 합니다. 이 예측들이 반복해서 맞아떨어졌다는 점이 진화를 단순한 가설 이상의 것으로 만듭니다.
그런데 한 단계가 더 남습니다. 진화가 일어났다는 것과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일어나는지는 다른 이야기니까요. 다음 글 자연선택은 지금도 작동한다에서는 적응이 정확히 무엇인지, 그리고 자연선택을 둘러싼 흔한 오해들을 하나씩 뜯어봅니다.
틀린 내용이나 더 궁금한 점이 있으면 문의하기로 알려 주세요. 확인한 뒤 고치고, 고친 날짜를 위에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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