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체 각인과 세포소기관 유전자의 유전
송준호(송쌤)송쌤생명과학입시연구소 대표
멘델의 법칙에는 전제가 하나 깔려 있었습니다. 어느 부모에게서 왔든 대립유전자의 효과는 똑같다는 전제예요. 아버지에게서 온 대립유전자든 어머니에게서 온 대립유전자든, 우성이면 우성으로 발현된다고 봤죠. 그런데 이 전제가 깨지는 예외적인 사례들이 있습니다.
부모가 누구인지에 따라 발현이 달라진다 — 유전체 각인
어떤 유전자는 아버지에게서 온 대립유전자만 활성화되고 어머니에게서 온 대립유전자는 항상 꺼져 있습니다(또는 그 반대). 이런 유전자를 각인 유전자(imprinted gene)라 하고, 이 현상을 유전체 각인(genomic imprinting)이라 부릅니다.
각인은 DNA 염기서열 자체가 바뀌는 게 아니라, 생식세포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특정 유전자에 메틸기(-CH₃) 표지가 붙어서 그 유전자의 발현이 꺼지는 방식으로 일어납니다. 이런 식으로 DNA 서열 변화 없이 유전자 발현 패턴이 대물림되는 현상을 후성유전(epigenetics)이라 하는데, 각인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같은 결실인데 증상이 정반대인 두 질환
각인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사람의 15번 염색체 특정 부위(15q11-13) 결실입니다. 이 부위가 없어졌을 때 어느 쪽 염색체가 없어졌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질환이 나타나요.
| 구분 | 결실된 염색체 | 질환 | 특징 |
|---|---|---|---|
| 사례 1 | 아버지에게서 받은 15번 | 프래더윌리증후군 | 과도한 식욕·비만, 근육긴장 저하 |
| 사례 2 | 어머니에게서 받은 15번 | 안젤만증후군 | 발달 지연, 잦은 웃음·과다행동 |
없어진 DNA 조각 자체는 똑같은데 결과가 이렇게 다른 이유는, 그 부위 안의 유전자들이 원래부터 한쪽 부모의 사본만 발현되도록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상적으로 발현돼야 할 사본이 결실로 사라져 버리니, 어느 부모 쪽이 결실됐는지에 따라 "아예 발현이 안 되는" 유전자가 서로 다른 거예요.

같은 결실이 부모에 따라 다른 병이 되는 각인, 그리고 어머니에게서만 내려오는 미토콘드리아 유전 — 송쌤생명과학 자체 제작
쌤 한마디 — 처음 이 단원을 배우면 "멘델 법칙에 예외가 이렇게 많으면 법칙이 틀린 거 아니냐"고 묻는 학생이 꼭 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런 예외들이 발견될 때마다 "왜 이 경우엔 안 맞을까"를 파고든 게 유전학을 오히려 더 정교하게 만들었어요. 멘델의 법칙은 여전히 유전의 기본 뼈대이고, 각인이나 연관은 그 위에 덧붙는 세부 규칙입니다.
핵 안이 아니라 세포질에도 유전자가 있다
지금까지 다룬 유전자는 전부 핵 안 염색체 위에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미토콘드리아와 엽록체는 자기만의 작은 DNA를 따로 갖고 있어요(왜 그런지는 세포내공생설 참고). 이 세포소기관 유전자는 멘델 유전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전달됩니다.
정자는 수정 시 세포질을 거의 남기지 않고 핵만 난자에 전달하는 반면, 난자는 세포질과 그 안의 미토콘드리아를 통째로 자손에게 물려줍니다. 그 결과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는 거의 전적으로 어머니 쪽에서만 자손에게 전달돼요. 이를 세포질유전(cytoplasmic inheritance) 또는 모계유전이라 합니다. 레베르시신경병증(LHON)처럼 미토콘드리아 DNA 돌연변이로 생기는 유전병은 아버지가 환자여도 자녀에게 전달되지 않고, 어머니가 환자면 아들딸 모두에게 전달된다는 특징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Ch.15에서는 유전자가 염색체 위에 있다는 사실 하나가 성 연관·연관과 재조합·염색체 이상·각인까지 얼마나 다양한 현상을 설명하는지 살펴봤습니다. 다음 Ch.16부터는 그 염색체를 이루는 DNA 자체의 분자 구조로 들어갑니다 — 유전 정보가 실제로 어떤 물질에, 어떤 구조로 저장되는지가 개념 16.1의 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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