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면역 — 몸이 병원체를 처음 만났을 때
송준호(송쌤)송쌤생명과학입시연구소 대표
수업에서 이 질문을 자주 던집니다. "종이에 손을 베였어요. 그 순간부터 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그러면 대개 "백혈구가 세균을 잡아먹어요", "항체가 나와요" 같은 답이 섞여 나옵니다. 그래서 다시 묻습니다. "항체는 몇 시간 만에 나올까요?"
정답은 "며칠 걸린다"입니다. 처음 만나는 병원체에 대한 항체가 쓸 만한 양으로 쌓이려면 대략 일주일이 필요해요. 그런데 세균은 조건만 맞으면 20분에 한 번씩 분열합니다. 항체를 기다리는 동안 몸이 아무것도 안 한다면, 우리는 진작에 모두 죽었을 겁니다.
그래서 몸에는 기다리지 않고 즉시 작동하는 방어 체계가 따로 있습니다. 그게 선천면역(innate immunity)입니다.
선천면역은 '약한 면역'이 아닙니다
학생들이 가장 먼저 잡아야 할 오개념이 이겁니다. 선천면역을 "초보적인 면역", "적응면역이 오기 전까지 버티는 임시 방어"로 읽는 경우가 정말 많아요. 그렇지 않습니다. 선천면역과 적응면역은 급이 다른 게 아니라 설계 목표가 다른 두 체계입니다.
| 구분 | 선천면역 | 적응면역 |
|---|---|---|
| 반응 속도 | 즉시 ~ 수 시간 | 처음 만나면 수 일 ~ 1주 |
| 대상 범위 | 넓다 — 병원체 무리 전체 | 좁다 — 특정 항원 하나 |
| 특이성 | 비특이적 | 매우 특이적 |
| 기억 | 없음(같은 균에 또 같은 속도) | 있음(두 번째는 훨씬 빠르고 세다) |
| 가지고 있는 생물 | 거의 모든 동물·식물 | 척추동물 |
정리하면 선천면역은 빠르고 광범위한 방어이고, 적응면역은 느리지만 정밀한 방어입니다. 곤충은 적응면역이 없는데도 세균이 득실대는 환경에서 멀쩡히 살아갑니다. 선천면역만으로도 대부분의 침입은 끝난다는 뜻이에요. 우리 몸에 들어오려던 병원체의 압도적 다수는 적응면역이 소식을 듣기도 전에 이미 처리됩니다.
1차 방어선 — 애초에 못 들어오게 하는 장벽
가장 싼 방어는 싸우지 않는 방어입니다. 몸의 바깥과 안이 만나는 모든 면에는 물리적·화학적 장벽이 깔려 있어요.
물리적 장벽부터 봅시다. 피부의 바깥층은 죽은 세포가 각질로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층입니다. 죽어 있고, 건조하고, 단단해요. 세균 입장에서는 영양분도 물도 없는 벽입니다. 소화관·호흡기·생식기처럼 안쪽으로 이어지는 면은 피부처럼 마를 수 없으니 대신 점막이 덮고 있습니다. 점막은 끈끈한 점액을 분비해 들어오는 입자를 붙잡아요. 기관지에서는 여기에 장치가 하나 더 붙습니다. 상피세포 표면의 섬모가 점액을 목 쪽으로 계속 밀어 올려서, 붙잡힌 먼지와 세균을 통째로 내보냅니다. 기침과 재채기도 이 밀어내기의 일부예요.
화학적 장벽도 같이 깔립니다.
- 라이소자임 — 눈물·침·콧물에 들어 있는 효소로, 세균 세포벽의 결합을 끊어 터뜨립니다. 효소가 특정 결합만 골라 끊는 원리는 단백질의 구조와 기능에서 본 그대로예요.
- 위산 — 위 내부는 pH 2 언저리입니다. 음식과 함께 삼켜진 세균 대부분이 여기서 끝납니다.
- 피지와 땀 — 피부 표면을 약산성으로 유지해 세균이 자라기 어렵게 만듭니다.
- 정상 세균무리 — 피부와 장에 이미 자리 잡은 무해한 세균들이 공간과 영양을 선점해, 병원성 세균이 비집고 들어올 자리를 줄입니다.
이 장벽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깨졌을 때 드러납니다. 화상 환자가 위험한 이유는 화상 자체보다 피부라는 방어벽이 통째로 사라졌기 때문인 경우가 많아요.
뚫렸을 때 — 식세포작용
장벽이 뚫리면 2차 방어선이 켜집니다. 첫 주자는 잡아먹는 세포, 식세포(phagocyte)입니다.
여기서 먼저 풀어야 할 질문이 있어요. 식세포는 무엇을 보고 "이건 적이다"라고 판단할까요? 항체처럼 정밀한 인식표가 없는데 말이죠. 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식세포는 병원체의 개별 신원이 아니라 병원체 부류가 공통으로 가진 표시를 봅니다. 세균의 세포벽 성분, 세균 편모의 단백질, 바이러스의 두 가닥 RNA처럼, 우리 세포에는 없고 병원체에는 흔한 분자 패턴이 있어요. 식세포 막에는 이런 패턴에 결합하는 수용체(대표적으로 Toll 유사 수용체)가 박혀 있습니다. 수용체가 리간드를 만나 세포 안으로 신호를 넘기는 구조는 신호 수용에서 다룬 방식 그대로입니다.
수용체가 반응하면 식세포는 병원체를 감싸 안아 세포 안으로 끌어들입니다. 이 동작이 대량 수송에서 배운 식세포작용(phagocytosis)이에요. 막이 병원체를 둘러싸 주머니를 만들고, 그 주머니가 리소좀과 융합하면 리소좀의 가수분해효소가 내용물을 분해합니다. 세포생물학에서 배운 막 수송이 면역 단원에서 그대로 재등장하는 지점이니 꼭 연결해 두세요.
식세포에도 종류가 있습니다.
- 호중구 — 백혈구 중 가장 수가 많고, 감염 부위에 가장 먼저 대량으로 몰려갑니다. 한바탕 싸우고 스스로도 죽습니다.
- 대식세포 — 조직에 상주하며 오래 살고, 훨씬 많이 잡아먹습니다. 감염 사실을 다른 세포에 알리는 역할도 합니다.
- 수지상세포 — 잡아먹는 것 자체보다, 삼킨 병원체의 조각을 들고 림프절로 가서 적응면역을 깨우는 일이 주 업무입니다. 두 체계를 잇는 다리예요.
염증 반응 — 붓고 붉어지는 건 고장이 아닙니다
다친 자리가 붉어지고, 부어오르고, 뜨끈해지고, 아픕니다. 학생들은 이걸 "상처가 악화된 증상"으로 읽지만, 정반대예요. 염증 반응(inflammatory response)은 몸이 의도적으로 켜는 방어 작전입니다.
순서를 따라가 봅시다. 조직이 손상되면 근처의 비만세포가 히스타민을 비롯한 물질을 방출합니다. 히스타민은 주변 모세혈관에 두 가지 일을 시켜요.
- 혈관을 넓힌다 → 그 부위로 오는 혈액량이 늘어납니다. 붉어지고 뜨거워지는 이유입니다.
- 혈관벽의 틈을 벌린다 → 혈장과 백혈구가 혈관 밖 조직으로 빠져나옵니다. 부어오르는 이유이고, 부으면 신경이 눌려 아픕니다.
즉 네 가지 증상은 부작용이 아니라, 전투 병력과 보급품을 현장으로 쏟아붓는 과정에서 나오는 결과입니다. 빠져나온 호중구가 세균을 잡아먹고, 싸우다 죽은 호중구와 조직 잔해와 세균이 섞인 것이 고름이에요.
감염이 국소를 넘어 퍼지면 반응도 전신으로 커집니다. 대식세포가 내보낸 신호 물질이 뇌의 체온 조절 중추에 작용해 발열을 일으켜요. 체온이 조금 올라가면 일부 병원체의 증식이 억제되고, 식세포의 활동과 조직 회복은 오히려 빨라집니다. 열도 무작정 내려야 할 고장이 아니라 조절된 방어 반응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너무 높으면 우리 몸의 효소도 변성되니 한계는 분명합니다.
보체 — 이름은 낯설지만 하는 일은 단순합니다
보체계(complement system)는 혈장에 떠다니는 30여 종의 단백질 무리입니다. 평소에는 활성이 없는 상태로 대기하다가, 병원체 표면을 만나면 하나가 켜지면서 다음 것을 켜는 연쇄 반응이 시작돼요. 효소 하나가 여러 개를 활성화하고 그게 다시 여러 개를 켜니, 신호가 단계마다 증폭됩니다.
연쇄가 끝나면 보체는 세 가지 방식으로 일합니다.
- 막공격복합체 형성 — 보체 단백질들이 병원체 막에 모여 통로 모양 구멍을 뚫습니다. 구멍이 생기면 물과 이온이 마구 드나들어 세포가 터져요. 세포막의 구조에서 본 선택적 투과성이 무너지는 상황입니다.
- 옵소닌화 — 병원체 표면에 보체 조각이 달라붙어 "여기 잡아먹어라"는 표시가 됩니다. 표시가 붙으면 식세포작용 효율이 크게 올라갑니다.
- 염증 증폭 — 일부 보체 조각은 비만세포를 자극하고 백혈구를 불러 모읍니다.
'보체'라는 이름은 항체의 작용을 보충한다는 뜻에서 붙었지만, 항체 없이 병원체 표면만으로도 켜집니다. 그래서 선천면역의 일원이면서, 나중에 배울 항체와 손잡으면 위력이 더 커지는 이중 소속이에요.

선천면역은 약한 게 아니라 속도와 범위를 택한 다른 설계다 — 송쌤생명과학 자체 제작
자연살해세포 — 감염된 '우리 세포'를 알아보다
식세포와 보체는 세포 밖에 있는 병원체를 상대합니다. 그런데 바이러스는 이미 우리 세포 안에 들어가 있어요. 밖에서 잡아먹을 대상이 없습니다.
이때 나서는 것이 자연살해세포(NK세포)입니다. 정상 세포는 표면에 "나는 정상적인 자기 세포"라는 표지 단백질을 내걸고 있는데, 바이러스에 감염되거나 암으로 변한 세포는 이 표지가 줄어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NK세포는 그 표지가 사라진 세포를 찾아내 자살을 유도합니다. 감염된 세포를 처리한다는 점에서 뒤에 배울 세포독성 T세포와 닮았지만, NK세포는 특정 항원을 기억하지 않고 즉시 일한다는 점에서 선천면역입니다.
| 방어선 | 구성 | 작동 방식 |
|---|---|---|
| 1차(장벽) | 피부, 점막, 섬모, 라이소자임, 위산, 정상 세균무리 | 침입 자체를 막는다 |
| 2차(내부) | 식세포, 염증 반응, 보체, NK세포, 발열 | 들어온 병원체를 빠르게 제거한다 |
| 3차(적응면역) | B세포·T세포, 항체 | 특정 항원을 정밀 공격하고 기억한다 |
쌤 한마디 — 선천면역 문제는 거의 다 "이건 특이적인가, 비특이적인가"와 "기억이 남는가"로 갈립니다. 시험지에서 어떤 방어 작용이 나오면 저는 학생에게 두 칸짜리 표를 그리게 해요. 대상을 가리는가? 두 번째엔 더 빠른가? 둘 다 '아니오'면 선천면역입니다. 용어를 스무 개 외우는 것보다 이 두 질문이 훨씬 오래갑니다.
정리하면
선천면역은 적응면역의 축소판이 아닙니다. 속도와 범위를 택한 다른 설계예요. 장벽이 대부분을 막고, 뚫린 것은 식세포와 보체와 염증 반응이 몇 시간 안에 처리하며, 세포 안으로 숨은 것은 NK세포가 훑습니다. 그동안 수지상세포가 병원체 조각을 들고 림프절로 달려가고 있고요.
그 조각이 도착한 다음부터가 진짜 특이적인 싸움입니다. 다음 개념에서는 적응면역의 원리 — 항원 인식과 클론선택을 다룹니다. 항체와 킬러T세포가 어떻게 역할을 나누는지는 체액성 면역과 세포성 면역에서, 그 기억이 백신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면역 기억과 백신에서 이어집니다.
틀린 내용이나 더 궁금한 점이 있으면 문의하기로 알려 주세요. 확인한 뒤 고치고, 고친 날짜를 위에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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