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송쌤생명과학입시연구소
개념캠벨생명과학

세균은 필요할 때만 유전자를 켠다 — 오페론

송준호(송쌤)송쌤생명과학입시연구소 대표

대장균 한 마리는 4천 개가 넘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학생들에게 늘 던지는 질문이 있어요. "이 유전자들을 전부 켜 두면 안 되나요? 그러면 뭐가 필요하든 항상 준비돼 있을 텐데."

말은 되는데, 세균 입장에선 파산하는 전략입니다. 단백질 하나를 만드는 데 아미노산·ATP·리보솜 시간이 전부 들어가거든요. 안 쓸 효소를 계속 찍어내는 세포와, 필요할 때만 찍어내는 세포가 같은 배지에서 경쟁하면 결과는 뻔합니다. 그래서 세균은 유전자를 켜고 끄는 스위치를 진화시켰습니다. 그 스위치의 이름이 오페론(operon)이에요.

오페론이란 무엇인가

오페론은 프로모터 하나가 여러 유전자를 한꺼번에 조절하는 DNA 단위입니다.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 프로모터 — RNA 중합효소가 달라붙는 자리. 전사의 출발점입니다.
  • 작동부위(operator) — 프로모터에 바로 이어 붙어 있는 짧은 구간. 여기가 실제 스위치입니다.
  • 구조유전자 — 실제로 효소를 암호화하는 유전자들. 보통 관련된 효소들이 나란히 붙어 있습니다.

여기서 꼭 짚고 갈 게 하나 더 있습니다. 스위치를 누르는 단백질을 만드는 조절유전자(regulatory gene)는 오페론 바깥에 따로 떨어져 있습니다. 자기만의 프로모터를 갖고, 오페론이 켜졌든 꺼졌든 상관없이 늘 조금씩 발현돼요. 시험에서 "조절유전자는 오페론의 구성 요소인가"를 묻는 경우가 실제로 있는데, 답은 아니오입니다.

조절유전자가 만드는 단백질이 억제인자(repressor)입니다. 이 단백질이 작동부위에 달라붙으면 RNA 중합효소가 전사를 진행하지 못해요. 프로모터 자체를 막는 게 아니라 바로 옆 작동부위를 점거해 길을 막는 방식입니다.

젖당 오페론 — 평소엔 꺼져 있다

가장 유명한 예가 대장균의 젖당 오페론(lac operon)입니다. 구조유전자가 세 개예요. lacZ는 젖당을 포도당과 갈락토스로 쪼개는 β-갈락토시데이스를, lacY는 젖당을 세포 안으로 들여오는 락토스 투과효소를 만듭니다. 세 번째 lacA는 트랜스아세틸레이스를 만드는데, 이 효소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아직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젖당이 없을 때는 억제인자가 활성 상태 그대로 작동부위에 붙어 있습니다. 전사가 일어나지 않고, 세 효소 중 아무것도 만들어지지 않아요. 젖당을 분해할 일이 없는데 분해 효소를 만드는 건 낭비니까 이게 합리적인 기본값입니다.

그러다 배지에 젖당이 들어오면 상황이 바뀝니다. 세포 안에 들어온 젖당 일부가 알로락토스라는 이성질체로 바뀌는데, 이 알로락토스가 억제인자에 결합해요. 그러면 억제인자의 모양(입체구조)이 변형되면서 작동부위에 대한 결합력을 잃고 DNA에서 떨어져 나갑니다. 길이 뚫리고 전사가 시작되죠. 이렇게 스위치를 켜는 신호 물질을 유도자(inducer)라 부릅니다.

젖당 오페론의 두 상태 — 젖당이 없을 때 억제인자가 작동부위를 막아 전사가 차단되고, 젖당이 있을 때 알로락토스가 억제인자를 불활성화해 전사가 시작된다

젖당 유무에 따른 젖당 오페론의 두 상태, 그리고 유도성·억제성 오페론의 비교 — 송쌤생명과학 자체 제작

여기서 나오는 결과물이 재미있습니다. 전사되는 mRNA가 세 유전자를 한 가닥에 담은 하나짜리예요. 리보솜은 이 mRNA 하나를 읽으면서 세 단백질을 순서대로 만들어냅니다. 젖당을 처리하는 데 필요한 세 도구가 항상 세트로 함께 켜지고 함께 꺼지는 셈이죠 — 오페론이라는 구조가 왜 효율적인지가 여기서 드러납니다.

참고로 세균에는 핵이 없어서, 전사와 번역이 같은 공간에서 거의 동시에 일어납니다. mRNA가 아직 다 만들어지기도 전에 리보솜이 앞쪽부터 읽기 시작해요. 진핵생물처럼 인트론을 잘라내고 캡·꼬리를 붙이는 가공 과정도 없습니다. 그래서 세균에서는 "전사를 시작할 것인가"라는 단 하나의 결정이 발현 조절의 거의 전부가 됩니다.

트립토판 오페론 — 평소엔 켜져 있다

정반대로 동작하는 오페론도 있습니다. 트립토판 오페론(trp operon)의 구조유전자들은 아미노산 트립토판을 합성하는 효소를 만듭니다.

세균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논리가 바로 나옵니다. 트립토판은 단백질 재료라 늘 필요하니까 합성 효소는 기본적으로 켜져 있어야 해요. 그런데 배지에 트립토판이 이미 넉넉하다면? 굳이 만들 필요가 없으니 꺼야죠.

그래서 trp 오페론의 억제인자는 혼자서는 작동부위에 붙지 못하는 불활성 상태로 만들어집니다. 트립토판이 세포 안에 충분히 쌓이면, 그 트립토판이 억제인자에 결합해 억제인자를 활성화시켜요. 그제서야 작동부위에 붙어 전사를 끕니다. 이렇게 스위치를 끄는 쪽으로 작용하는 신호 물질을 공동억제자(corepressor)라고 합니다.

구분젖당 오페론 (유도성)트립토판 오페론 (억제성)
기본 상태OFFON
억제인자가 만들어질 때활성형 (바로 결합 가능)불활성형 (혼자선 결합 못 함)
신호 물질유도자 — 알로락토스공동억제자 — 트립토판
신호가 붙으면억제인자가 떨어져 전사 ON억제인자가 붙어 전사 OFF
효소의 역할영양분 분해(이화)영양분 합성(동화)

제가 수업에서 보면 여기가 최대 고비입니다. "억제인자"라는 이름이 하나뿐이라, 두 오페론에서 그 단백질이 정반대의 초기 상태로 만들어진다는 걸 놓치기 쉬워요. 외우지 말고 목적으로 되짚으면 헷갈릴 일이 없습니다. 분해 효소는 분해할 게 있을 때 켜야 하니 기본 OFF, 합성 효소는 만들어야 하니 기본 ON — 이 한 줄에서 나머지가 전부 따라 나옵니다.

그런데 젖당이랑 포도당이 같이 있으면?

학생들이 여기까지 오면 꼭 이 질문을 합니다. 좋은 질문이에요. 대장균은 포도당을 훨씬 쉽게 쓰기 때문에, 둘 다 있으면 포도당부터 씁니다. 그러면 젖당이 있으니 억제인자는 이미 떨어져 나갔을 텐데, 왜 젖당 분해 효소가 많이 안 만들어질까요?

여기서 두 번째 스위치가 등장합니다. 지금까지 본 억제인자는 전사를 막는 음성 조절이었죠. 젖당 오페론에는 전사를 부추기는 양성 조절 장치도 따로 붙어 있습니다.

세포 안 포도당이 부족해지면 cAMP라는 신호 분자의 농도가 올라갑니다. 이 cAMP가 CAP(이화대사물 활성 단백질)에 결합하면 CAP이 활성화돼 프로모터 근처에 달라붙고, RNA 중합효소가 프로모터에 훨씬 잘 붙도록 도와줍니다. 결과적으로 전사량이 크게 올라가요. 반대로 포도당이 풍부하면 cAMP가 낮아 CAP이 놀고 있으니, 억제인자가 떨어져 있어도 전사는 미지근한 수준에 머뭅니다.

정리하면 젖당 오페론에는 스위치가 두 개 달려 있는 셈입니다. "젖당이 있는가"를 억제인자가 확인하고, "포도당이 없는가"를 CAP이 확인합니다. 둘 다 통과해야 비로소 전사가 활발하게 일어나요. 세균은 이 이중 확인으로 "쓸 수 있는 것 중 가장 값싼 연료부터" 쓰는 순서를 지킵니다.

쌤 한마디 — 오페론 모델은 프랑수아 자코브와 자크 모노가 1961년에 제안했습니다. 놀라운 건 이 사람들이 DNA 서열을 읽어본 게 아니라, 돌연변이 대장균들의 행동만 비교해서 이 구조를 추론해냈다는 점이에요. 어떤 돌연변이는 젖당이 없어도 효소를 계속 만들고(작동부위나 억제인자 고장), 어떤 돌연변이는 젖당이 있어도 절대 안 만들죠. 이 조합들을 맞춰가며 "억제인자라는 단백질이 있고, 그게 붙는 자리가 따로 있다"는 걸 종이 위에서 먼저 그려낸 겁니다. 두 사람은 앙드레 르보프와 함께 196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습니다.

정리하면

세균의 유전자 발현 조절은 전사를 시작할지 말지라는 한 지점에 거의 집중돼 있습니다. 억제인자가 작동부위를 막느냐 비우느냐가 스위치이고, 그 억제인자의 상태를 유도자(젖당 쪽) 또는 공동억제자(트립토판 쪽)가 결정합니다. 여기에 CAP처럼 전사를 밀어주는 양성 조절이 얹히면 "얼마나 세게 켤 것인가"까지 조율되고요.

그런데 우리 몸의 세포는 사정이 좀 다릅니다. 간세포와 신경세포는 완전히 같은 유전체를 갖고 있는데도 전혀 다른 단백질을 만들거든요. 스위치 하나로 설명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닙니다. 다음 개념(18.2)에서는 진핵생물이 염색질 구조부터 단백질 분해까지 발현의 모든 단계에 조절점을 두고 있다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틀린 내용이나 더 궁금한 점이 있으면 문의하기로 알려 주세요. 확인한 뒤 고치고, 고친 날짜를 위에 남깁니다.

함께 보면 좋은 글

이 개념과 이어지는 글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