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핵생물 유전자 발현의 다단계 조절 — 염색질 구조와 전사 개시
송준호(송쌤)송쌤생명과학입시연구소 대표
여러분의 간세포와 신경세포는 유전체가 똑같습니다. 하나의 수정란에서 분열해 나온 것이니 당연하죠. 그런데 결과물은 완전히 다릅니다. 간세포는 알부민을 쏟아내고, 신경세포는 신경전달물질 수용체를 만들며, 서로가 만드는 단백질은 거의 겹치지 않아요.
같은 악보를 들고 전혀 다른 곡을 연주하는 셈입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요? 답은 전형적인 세포가 자기 유전자 중 극히 일부만 켜고 나머지는 꺼둔다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그 켜고 끄기가, 바로 앞 개념(18.1)에서 본 세균의 오페론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여러 층위에서 일어납니다.
진핵생물은 조절 지점이 여러 개다
세균의 조절은 사실상 "전사를 시작할 것인가" 한 지점에 몰려 있습니다. 그런데 진핵세포에서는 유전자가 단백질이 되기까지 거치는 단계가 훨씬 많고, 그 단계마다 밸브가 하나씩 달려 있습니다.
염색질을 풀지 말지, 전사를 시작할지 말지, pre-mRNA에서 어떤 엑손을 남길지, 완성된 mRNA를 얼마나 오래 살려둘지, 번역을 시작할지 말지, 만들어진 단백질을 언제 분해할지 — 여섯 군데 어디서나 발현량이 조절됩니다. 그중에서도 실제로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게 앞의 두 단계, 염색질 구조와 전사 개시예요. 이 글에서는 이 둘을 집중해서 봅니다.
1단계 — 실이 감겨 있으면 읽을 수가 없다
진핵생물 DNA는 맨몸으로 있는 게 아니라 히스톤 단백질에 감겨 뉴클레오솜을 이루고, 그게 다시 겹겹이 접혀 염색질을 만듭니다. 여기서 조절의 첫 단추가 나옵니다. 실패에 단단히 감긴 DNA는 전사인자도 RNA 중합효소도 접근할 수 없습니다. 서열이 멀쩡히 있어도 물리적으로 읽을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세포는 이 감김 정도를 조절합니다. 대표적인 방법이 두 가지입니다.
히스톤 아세틸화는 히스톤 단백질에서 삐져나온 꼬리 부분에 아세틸기를 붙이는 겁니다. 히스톤 꼬리는 원래 양전하를 띠고 있어서 음전하인 DNA를 강하게 끌어당기는데, 아세틸기가 붙으면 이 양전하가 중화돼요. 붙잡는 힘이 약해지니 염색질이 느슨해지고, 전사 기구가 들어올 틈이 생깁니다. 반대로 아세틸기를 떼어내면 다시 뭉치면서 유전자가 조용해지죠.
DNA 메틸화는 DNA 자체의 염기(주로 시토신)에 메틸기를 붙이는 겁니다. 메틸기가 많이 붙은 부위는 대체로 응축되고 전사가 억제돼요. 척추동물에서 오래 꺼져 있는 유전자를 조사해보면 메틸화가 짙게 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서 학생들이 자주 헷갈립니다. "메틸기가 붙었다"는 말이 히스톤에도 나오고 DNA에도 나오거든요. 둘은 다른 얘기입니다. DNA 메틸화는 대체로 억제 쪽이지만, 히스톤 메틸화는 어느 아미노산에 몇 개나 붙느냐에 따라 억제가 될 수도 활성화가 될 수도 있어요. 시험 범위에서는 보통 "DNA 메틸화 = 억제, 히스톤 아세틸화 = 활성"까지만 확실히 잡고 가면 됩니다.

염색질 수준의 조절, 전사 개시 복합체의 조립, 그리고 발현 단계마다 놓인 조절점 — 송쌤생명과학 자체 제작
염기서열은 그대로인데 발현만 달라진다 — 후성유전
아세틸기와 메틸기는 DNA의 염기서열을 전혀 바꾸지 않습니다. 그저 위에 붙었다 떨어지는 표지일 뿐이죠. 그런데 이 표지가 세포가 분열할 때 딸세포로 그대로 복사돼 넘어갑니다. 간세포가 분열해서 만든 세포가 여전히 간세포인 이유가 여기 있어요.
이렇게 염기서열의 변화 없이 전달되는 발현 패턴을 후성유전(epigenetics)이라고 합니다. 유전학에서 다루던 개념 중 이걸 이미 만난 적이 있어요 — 유전체 각인이 대표적입니다. 아버지에게서 온 대립유전자와 어머니에게서 온 대립유전자는 서열이 같아도 한쪽만 발현되는데, 그 차이를 만드는 게 바로 생식세포 형성 과정에서 찍힌 메틸화 표지죠.
쌤 한마디 — 후성유전이 왜 흥미로운지 보여주는 사례가 일란성 쌍둥이입니다. 유전체가 사실상 동일한데도 나이가 들수록 두 사람의 DNA 메틸화 패턴은 점점 벌어집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다른 것을 먹고 다르게 살아온 흔적이 유전자 위에 표지로 쌓이는 거예요. "타고난 것이냐 길러진 것이냐"라는 오래된 질문에, 분자 수준에서 그 둘이 만나는 지점이 실제로 있다는 걸 보여준 셈입니다.
2단계 — 전사인자가 여럿 모여야 시작된다
염색질이 풀렸다고 전사가 자동으로 시작되지는 않습니다. 진핵생물의 RNA 중합효소는 세균과 달리 혼자서는 프로모터를 찾지도, 붙지도 못합니다. 반드시 전사인자(transcription factor)라는 단백질들의 도움을 받아야 해요.
프로모터에 기본적으로 모여드는 전사인자들을 일반전사인자라고 하는데, 이들만 모이면 전사는 아주 낮은 수준으로만 일어납니다. 유전자를 제대로 켜려면 여기에 하나가 더 필요해요.
바로 인핸서(enhancer)입니다. 인핸서는 그 유전자를 조절하는 DNA 구간인데, 놀랍게도 프로모터에서 수천 염기쌍 떨어진 곳에 있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유전자 뒤쪽이나 인트론 안에 들어앉아 있기도 해요. 처음 배우면 "그렇게 멀리 있는 게 어떻게 영향을 주지?" 싶은데, 이게 이 단원에서 가장 그림으로 봐야 이해되는 부분입니다.
인핸서에 활성인자(activator)라는 전사인자가 결합하면, 그 사이의 DNA가 휘어져 고리를 만들면서 인핸서와 프로모터가 물리적으로 가까워집니다. 그 사이를 매개단백질(mediator) 복합체가 이어주고요. 이렇게 활성인자·매개단백질·일반전사인자·RNA 중합효소가 한 덩어리로 모인 것이 전사개시 복합체이고, 여기까지 조립돼야 비로소 전사가 활발하게 일어납니다.
DNA를 뻣뻣한 직선으로 상상하면 이 그림이 안 그려집니다. 실제 DNA는 상당히 잘 휘는 실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맞아요.
왜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었을까
여기가 이 단원의 핵심입니다. 조절 방식이 복잡해진 덕분에 조합적 조절이 가능해졌거든요.
어떤 유전자를 켜는 데 활성인자 세 종류가 동시에 필요하다고 해봅시다. 그러면 그 세 가지를 모두 갖춘 세포에서만 그 유전자가 켜집니다. 활성인자가 스무 종류만 있어도 그것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어마어마하게 많은 경우의 수가 나와요. 세포마다 갖고 있는 활성인자의 조합이 다르다는 것, 그게 곧 그 세포가 무슨 세포인가를 결정합니다. 간세포와 신경세포의 차이가 여기서 나옵니다.
그럼 그 활성인자 자체는 어떻게 켜질까요? 상당수가 세포 밖에서 온 신호에 반응합니다. 호르몬이나 성장인자가 수용체에 붙으면 인산화 연쇄반응이 일어나고, 그 끝에서 전사인자가 활성화돼 핵으로 들어가 특정 유전자를 켜는 식이죠. 세포 바깥의 상황이 유전자 발현까지 연결되는 통로가 이렇게 만들어집니다.
전사 이후에도 조절은 계속된다
전사가 끝났다고 조절이 끝나는 게 아닙니다. 나머지 네 단계를 짧게만 짚어둘게요.
먼저 대체 스플라이싱이 있습니다. 같은 pre-mRNA에서 어떤 엑손을 남기느냐를 세포 종류나 발생 시기에 따라 다르게 정하면, 유전자 하나에서 서로 다른 단백질이 나옵니다.
다음은 mRNA의 수명입니다. 세균의 mRNA는 만들어진 지 몇 분 만에 분해되지만, 진핵세포의 mRNA는 몇 시간에서 며칠까지 유지되기도 해요. 그리고 얼마나 오래 남아 있느냐가 곧 그 단백질을 얼마나 많이 만드느냐를 좌우합니다. mRNA를 빨리 분해해버리는 것만으로도 발현을 확 줄일 수 있는 겁니다.
번역 단계에서도 조절이 걸립니다. 개시 인자를 막아 리보솜이 아예 붙지 못하게 하는 식이죠. 마지막으로 완성된 단백질도 그냥 두지 않습니다. 잘라내는 가공이 필요한 경우가 있고, 수명이 다한 단백질에는 유비퀴틴이라는 표지가 붙어 프로테아솜이라는 분해 기구로 끌려갑니다. 이 분해 속도를 조절하는 것도 엄연한 발현 조절이에요.
정리하면
세균은 스위치 하나로 끝냅니다. 진핵생물은 여섯 개의 밸브를 갖고 있고, 그것들을 조합해서 씁니다. 그중 무게중심은 앞쪽 두 단계에 있어요 — 염색질을 풀 것인가(아세틸화·메틸화), 그리고 전사개시 복합체를 조립할 것인가(인핸서와 활성인자).
그리고 이 조절이 어긋나면 어떻게 되는지도 이어서 생각해볼 만합니다. 세포분열을 촉진하는 유전자가 꺼져야 할 때 꺼지지 않거나, 멈추라고 신호를 보내는 유전자가 메틸화로 침묵당하면 어떻게 될까요? 세포주기 조절이 무너지는 경로가 바로 그것이고, 암 세포에서 실제로 관찰되는 일입니다. 이 단원의 뒷부분에서 다시 만나게 될 이야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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