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송쌤생명과학입시연구소
개념캠벨생명과학

새 유전자는 어디서 오는가 — 중복·재배열·돌연변이가 빚어낸 유전체

송준호(송쌤)송쌤생명과학입시연구소 대표

지난 개념에서 사람 유전체의 구성을 뜯어봤습니다(비암호화 DNA와 다유전자군). 거기서 미뤄 둔 질문을 오늘 꺼냅니다. 학생들에게 이렇게 묻죠. "새 유전자는 어디서 옵니까?"

돌아오는 답은 대개 "돌연변이요"입니다. 반은 맞는데, 결정적인 한 가지가 빠졌어요. 이미 쓰고 있는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대개 손해만 납니다. 필수 단백질이 망가지니까요. 새 기능이 태어나려면 먼저 망가져도 되는 여분의 사본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번 개념의 주인공은 돌연변이가 아니라 중복(duplication)입니다.

통째로 두 배 — 전체 유전체 중복

가장 통 큰 방식은 유전체 전체가 두 배가 되는 배수체화입니다. 감수분열에서 염색체 분리가 통째로 실패하면 일어나요. 개체 입장에선 대형 사고지만, 유전자 전체에 여분 사본이 한 번에 생긴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식물에서는 드물지 않습니다. 우리가 먹는 빵밀은 서로 다른 조상 종의 유전체가 합쳐진 6배체예요. 동물에서는 훨씬 드물지만, 척추동물 조상 계통에서 초기에 전체 유전체 중복이 두 차례쯤 일어났다는 가설이 유력하게 논의되고, 효모에서는 약 1억 년 전 중복의 흔적이 서열에 남아 있는 것이 확인됐습니다.

중복 직후에는 모든 유전자가 사본을 둘씩 갖습니다. 하나만 있어도 사는 데 문제가 없으니, 나머지 하나에는 돌연변이가 쌓여도 즉시 제거되지 않습니다. 진화가 실험해 볼 여유 공간이 생기는 겁니다.

염색체가 붙고 끊어진다 — 사람 2번 염색체의 증거

유전체는 조각 단위로도 재배열됩니다. 큰 조각이 뒤집히거나(역위), 다른 염색체로 옮겨 붙거나(전좌), 두 염색체가 아예 하나로 융합되기도 해요.

교과서적 사례가 사람에게 있습니다. 사람의 염색체는 23쌍인데 침팬지·고릴라·오랑우탄은 모두 24쌍입니다. 사람 쪽에서 한 쌍이 통째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조상의 두 염색체가 하나로 융합해 사람의 2번 염색체가 된 것입니다.

증거가 꽤 깔끔합니다. 첫째, 사람 2번 염색체 한가운데에서 텔로미어 반복 서열(TTAGGG)이 발견됩니다. 텔로미어는 원래 염색체 끝에만 있어야 하는데, 끝과 끝이 맞붙었다면 흔적이 딱 거기 남겠죠. 둘째, 같은 염색체에 기능을 잃은 두 번째 중심절 자리가 남아 있습니다. 셋째, 유전자 배열이 침팬지의 두 염색체와 순서대로 대응합니다.

전체 유전체 중복, 두 염색체가 하나로 융합된 사람 2번 염색체, 그리고 유전자 중복 후 사본이 위유전자가 되거나 새 기능을 얻는 두 갈래

전체 유전체 중복 → 염색체 수준 재배열 → 유전자 중복 후 두 갈래 운명 — 송쌤생명과학 자체 제작

유전자 하나가 둘이 되는 순간

유전자 하나만 복사되는 일도 흔합니다. 주된 통로는 불균등 교차예요. 감수분열에서 상동염색체가 짝을 지을 때 반복 서열이 깔려 있으면 같은 자리끼리 맞물리지 못하고 한 칸 어긋나 맞물릴 수 있습니다. 여기서 교차가 일어나면 한쪽은 그 구간을 둘 갖고, 다른 쪽은 잃습니다.

앞 개념이 여기서 그대로 이어집니다. 유전체 절반 이상을 채운 반복 서열이 바로 이 어긋난 짝짓기를 유도하는 발판이거든요. DNA 복제 중 중합효소가 반복 구간에서 미끄러지는 식으로도 사본이 늘어납니다.

사본 두 개의 갈림길

사본이 둘이 되면 그다음은 점돌연변이의 시간입니다. 한쪽은 원래 기능을 계속 맡고, 나머지 한쪽에 변이가 쌓이면서 셋 중 하나의 길로 갑니다.

운명무슨 일이 일어나나결과
위유전자화기능에 치명적인 변이가 먼저 들어옴산물을 못 만드는 위유전자로 남음 — 가장 흔한 결말
새 기능 획득기능을 유지한 채 성질이 바뀌는 변이가 쌓임원래와 다른 일을 하는 새 유전자
기능 분담두 사본이 조절 서열을 조금씩 잃음조상 유전자의 역할을 시기·조직별로 나눠 맡음

새 기능 획득의 대표 사례가 라이소자임과 α-락트알부민입니다. 앞은 세균 세포벽을 분해하는 효소, 뒤는 젖 속 젖당 합성에 관여하는 단백질이에요. 하는 일이 전혀 다른데 아미노산 서열은 약 40%가 일치합니다. 중복된 사본 하나가 전혀 다른 직업을 갖게 된 겁니다. 서열 유사도로 이런 계보를 읽는 방법은 DNA·단백질 서열 비교에서 다룬 그대로입니다.

쌤 한마디 — 학생들이 자주 하는 오해가 "유전자 수가 많을수록 복잡한 생물"이라는 겁니다. 사람의 단백질 암호화 유전자는 약 2만 개인데, 몸길이 1 mm짜리 예쁜꼬마선충도 비슷한 수준입니다. 벼는 사람보다 많고요. 복잡함을 만드는 건 유전자의 개수가 아니라 스플라이싱으로 한 유전자에서 여러 단백질을 뽑아내는 방식, 그리고 언제 어디서 켤지 정하는 조절 서열의 정교함입니다.

글로빈 유전자군 — 이 모든 과정의 표본

중복·이동·변이 축적이 한 자리에서 모두 보이는 사례가 글로빈입니다. 대략 이런 순서로 읽어요. 산소를 나르던 조상 글로빈 유전자 하나가 아주 오래전(대략 4~5억 년 전으로 추정) 중복되어 α 계열과 β 계열로 갈라집니다. 두 계열은 이후 서로 다른 염색체로 이동했고(사람에서 α는 16번, β는 11번), 각 계열 안에서 추가 중복이 반복되며 사본이 늘었습니다. 늘어난 사본들은 변이를 쌓으며 배아용·태아용·성인용으로 역할을 나눠 가졌고, 살아남지 못한 사본은 위유전자로 무리 안에 남았습니다.

지금 16번·11번 염색체에 늘어선 글로빈 배열은, 그러니까 수억 년짜리 사건 기록을 순서대로 보존한 화석층에 가깝습니다.

엑손 셔플링과 전이인자

유전자 내부를 재조립하는 방식도 있습니다. 엑손 셔플링(exon shuffling)은 엑손 단위로 조각을 복사하거나 다른 유전자에서 가져와 새 조합을 만드는 것입니다. 인트론이 길게 깔려 있어 그 안에서 재조합이 일어나도 엑손 자체는 온전히 보존된다는 점이 핵심이에요. 혈전을 녹이는 조직 플라스미노젠 활성제(TPA)의 유전자가 자주 인용되는데, 이 유전자의 엑손들은 각각 다른 단백질 유전자에서 발견되는 것과 닮은 조각들의 조합입니다. 기능 부품을 레고처럼 붙여 새 단백질을 만든 셈이죠.

마지막으로 전이인자가 유전체 진화에 기여하는 방식을 정리합시다.

  • 재배열의 발판 — 같은 전이인자가 여러 자리에 깔려 있어 불균등 교차와 전좌가 일어날 확률을 높입니다.
  • 유전자를 끌고 다님 — 이동할 때 옆에 있던 엑손이나 조절 서열을 함께 옮겨 새 조합을 만듭니다.
  • 발현 조절의 변경 — 유전자 근처나 인트론에 끼어들어 새 스플라이싱 자리나 조절 요소로 작동하게 됩니다.
  • 부품 자체의 재활용 — 항체 다양성을 만드는 V(D)J 재조합에 쓰이는 RAG 유전자처럼, 전이인자의 효소 유전자가 아예 숙주의 기능 유전자로 편입된 사례도 있습니다.

오해 하나만 짚고 갑시다. 이 모든 과정에 목적이나 방향은 없습니다. "필요해서 유전자를 늘렸다"가 아니라, 복제와 감수분열의 사고로 사본이 생겼고 그중 살아남은 조합이 남은 것뿐이에요. 대다수 중복 사본은 위유전자가 되어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정리하면

유전체가 커지고 새 유전자가 생기는 경로는 규모 순으로 세 층입니다. 전체 유전체 중복은 모든 유전자에 여분 사본을 한 번에 만들고, 염색체 수준 재배열은 조각을 뒤집고 옮기고 붙입니다(사람 2번 염색체가 그 산물이죠). 개별 유전자 중복은 불균등 교차 등으로 사본을 늘리는데, 그 사본이 돌연변이를 쌓으며 위유전자가 되거나 새 기능을 얻거나 역할을 나눠 맡습니다. 여기에 엑손 셔플링과 전이인자의 이동이 더해져 유전자 내부까지 재조립되고요.

그렇다면 이렇게 쌓인 차이를 종과 종 사이에서 비교하면 무엇을 읽어낼 수 있을까요? 사람과 침팬지의 DNA가 얼마나 닮았는지, 그 작은 차이가 어디에 몰려 있는지 — 다음 개념에서 유전체 비교와 발생 조절 유전자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틀린 내용이나 더 궁금한 점이 있으면 문의하기로 알려 주세요. 확인한 뒤 고치고, 고친 날짜를 위에 남깁니다.

함께 보면 좋은 글

이 개념과 이어지는 글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