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체에 남은 기록 — 동원유전자와 부동유전자가 서로 다른 시계인 이유
송준호(송쌤)송쌤생명과학입시연구소 대표
앞 글까지가 "계통수를 어떻게 만드는가"였습니다. 여기서부터는 결이 조금 다릅니다. 유전체를 읽기 시작하면서 형태만 보던 시절에는 물을 수조차 없던 질문이 생겼거든요.
이런 질문들입니다. 새 유전자는 어디서 오는가. 왜 사람과 초파리처럼 멀리 떨어진 생물이 몸을 만드는 데 같은 유전자를 쓰는가. 그리고 두 종의 유전자를 비교했을 때, 그 차이가 말해 주는 시점은 정확히 언제인가.
마지막 질문이 이 글의 중심입니다. 여기서 헷갈리면 유전체 자료로 계통을 논하는 모든 문장이 흔들립니다.
출발점 — 유전자는 복제되면서 늘어난다
유전체의 진화에서 이미 본 내용을 한 줄로 되짚겠습니다. 이미 쓰고 있는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대개 손해입니다. 그래서 새 기능이 생기려면 먼저 망가져도 되는 여분의 사본이 있어야 하고, 그 사본을 만드는 사건이 유전자 중복(gene duplication)이에요.
중복이 반복되면 서로 닮은 유전자들이 한 유전체 안에 무리를 이룹니다. 이걸 유전자 가족(gene family)이라고 부르죠. 글로빈 유전자군이 대표적입니다. 산소를 나르던 조상 유전자 하나가 중복을 거듭해 α 계열과 β 계열로 갈라지고, 각 계열 안에서 배아용·태아용·성인용으로 역할이 나뉘었고, 살아남지 못한 사본은 위유전자로 남았습니다.
여기까지는 복습입니다. 이제 계통학의 질문을 얹습니다. 유전체 안에는 중복으로 생긴 관계와 종분화로 생긴 관계가 뒤섞여 있습니다.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하면 유전체 자료를 계통에 쓸 수 없어요.
동원유전자와 부동유전자 — 갈라진 사건이 다르다
상동인 유전자들을 갈라놓은 사건이 무엇이었느냐에 따라 이름이 다릅니다.
| 구분 | 동원유전자(ortholog) | 부동유전자(paralog) |
|---|---|---|
| 우리말 | 직교 상동 유전자 | 방계 상동 유전자 |
| 갈라놓은 사건 | 종분화 | 유전자 중복 |
| 어디에 있나 | 서로 다른 종에 하나씩 | 대개 같은 종 안에 여러 개 |
| 기능 | 대체로 같은 일을 함 | 서로 다른 일을 맡게 되는 경우가 많음 |
| 차이가 말해 주는 것 | 두 종이 갈라진 뒤 흐른 시간 | 두 사본이 갈라진 뒤 흐른 시간 |
글로빈으로 붙여 보면 단번에 정리됩니다.
- 사람의 α-글로빈과 사람의 β-글로빈 → 부동유전자입니다. 한 조상 유전자가 중복돼 갈라진 사이예요.
- 사람의 β-글로빈과 생쥐의 β-글로빈 → 동원유전자입니다. 조상 종에 있던 같은 유전자가 종분화로 갈라진 사이고요.
여기가 이 단원 최대의 함정입니다
이제 왜 이 구분을 그렇게 따지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종의 계통수를 그리고 싶다면 반드시 동원유전자끼리 비교해야 합니다.
이유를 따라가 보세요. 부동유전자는 종이 갈라지기 훨씬 전에 이미 유전체 안에서 갈라져 있었을 수 있습니다. 사람의 α-글로빈과 생쥐의 β-글로빈을 비교해 "사람과 생쥐가 이만큼 다르다"고 말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 차이의 대부분은 두 종이 갈라진 시간이 아니라 α와 β가 갈라진 아주 오래된 중복 사건에서 온 것입니다. 종분화 시점을 엄청나게 과대평가하게 되죠.
그래서 유전체 비교에는 늘 앞 단계가 붙습니다. "두 종에서 서로 대응하는 유전자가 무엇인지"부터 제대로 짝지어야 합니다. 유전자 가족처럼 비슷한 사본이 여럿인 경우에는 이 짝짓기가 생각보다 까다로워요. 겉으로 가장 비슷해 보이는 짝이 실제 동원 관계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쌤 한마디 — 한 문장으로 외우세요. "유전자의 나무와 종의 나무는 다른 나무다." 유전자 하나를 골라 계통수를 그리면 그건 어디까지나 그 유전자가 지나온 역사입니다. 중복으로 사본이 늘어난 자리, 사본 하나가 사라진 자리가 그 안에 섞여 있어요. 종의 역사를 알고 싶다면 동원유전자를 골라야 하고, 그래서 요즘은 유전자 하나가 아니라 여러 유전자를 한꺼번에 넣어 서로의 어긋남을 상쇄시킵니다.

갈라진 사건이 다르다 — 중복이냐 종분화냐 — 송쌤생명과학 자체 제작
거꾸로도 읽힌다 — 중복이 먼저였나, 종분화가 먼저였나
방금은 유전자 나무를 종 나무로 착각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관점을 뒤집으면, 바로 그 어긋남이 중복 사건이 일어난 시점을 알려 주는 정보가 됩니다.
사람과 생쥐의 α·β 글로빈 네 개를 넣고 계통수를 그렸다고 해 봅시다. 나올 수 있는 모양은 크게 둘입니다.
- 사람α+생쥐α가 한 묶음, 사람β+생쥐β가 한 묶음으로 나오는 경우 → 중복이 먼저 일어나 α와 β가 갈라진 뒤에 종분화가 일어났다는 뜻입니다. 조상 종이 이미 α와 β를 둘 다 갖고 있었던 거죠.
- 사람α+사람β가 한 묶음, 생쥐α+생쥐β가 한 묶음으로 나오는 경우 → 종분화가 먼저였고, 각 계통에서 따로 중복이 일어났다는 뜻입니다.
같은 나무를 놓고 읽어 내는 정보가 완전히 다르죠. 첫 글에서 말한 원칙이 여기서도 그대로 작동합니다 — 분지점이 무엇을 뜻하는지부터 정하고 읽어야 한다. 종의 계통수에서 분지점은 종분화이지만, 유전자 계통수에서 분지점은 종분화일 수도 중복일 수도 있습니다.
어긋남을 만드는 원인이 하나 더 있습니다. 사본의 소실이에요. 중복으로 생긴 사본 중 하나가 어느 계통에서만 사라지면, 남은 것들끼리 짝을 지었을 때 동원 관계가 아닌 짝이 마치 동원인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유전체 비교에서 유전자를 짝짓는 일이 기계적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보존된 유전자 — 왜 초파리와 생쥐가 같은 도구를 쓰는가
유전체를 비교하다 나온 가장 놀라운 발견은 변하지 않은 쪽이었습니다. 몸의 기본 설계를 정하는 유전자들이, 생김새가 전혀 다른 동물들 사이에서 놀랄 만큼 비슷하게 남아 있었거든요.
대표가 혹스 유전자(Hox gene)입니다. 배아에서 어디에 무엇을 만들지, 즉 앞뒤 축을 따라 각 부위의 정체를 정하는 유전자들이에요. 이 유전자들은 호메오박스라는 공통 서열을 품고 있습니다. 약 180개 염기로 이루어져 있고, 번역되면 60개 아미노산짜리 호메오도메인이 됩니다. 이 부위가 DNA에 달라붙어 다른 유전자들의 발현을 켜고 끄는 일을 해요.
여기서 눈여겨볼 것이 두 가지입니다.
- 서열이 거의 그대로입니다. 초파리와 생쥐처럼 수억 년 전에 갈라진 동물 사이에서도 호메오도메인 부분은 대단히 비슷합니다. 자연선택이 변화를 걸러 냈다는 뜻이에요. 몸의 앞뒤를 정하는 스위치가 고장 나면 개체가 살아남지 못하니, 변이가 쌓일 틈이 없습니다.
- 배열 순서까지 같습니다. 혹스 유전자들은 염색체 위에 줄지어 있는데, 그 순서가 몸의 앞뒤 순서와 대응합니다. 이 대응 관계가 초파리와 척추동물에서 공통으로 나타나요.
이게 계통학적으로 무슨 뜻일까요. 이 정교한 배열이 두 계통에서 우연히 따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은 사실상 없습니다. 그러니 좌우대칭동물의 공통 조상이 이미 이 도구상자를 갖고 있었다는 결론이 남습니다. 동물들이 그토록 다양하게 생긴 이유는 도구가 달라서가 아니라, 같은 도구를 언제 어디서 얼마나 쓰는지가 달라서였던 겁니다. 이 관점의 자세한 이야기는 비교유전체학과 발생에서 다뤘습니다.
척추동물의 혹스 유전자 무리 — 중복이 남긴 흔적
앞의 두 이야기가 여기서 합쳐집니다. 초파리는 혹스 유전자가 한 무리로 몰려 있는 반면, 포유류를 비롯한 척추동물은 서로 다른 염색체에 여러 벌의 혹스 유전자 무리를 갖고 있습니다.
이걸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척추동물 계통 초기에 대규모 중복이 일어나 무리 전체가 여러 벌로 늘어났다고 보는 겁니다. 여러 벌이 생기면 원래 기능을 유지할 사본은 확보되니, 나머지 사본들은 새 역할을 맡을 여유가 생깁니다. 척추동물에서 사지, 복잡한 머리 구조 같은 새로운 형태가 나타난 배경으로 이 중복이 자주 거론되는 이유예요.
여기서 용어를 복습해 봅시다. 사람의 여러 벌 혹스 무리에 들어 있는 사본들은 서로 부동유전자입니다(중복으로 갈라졌으니까요). 반면 사람의 어떤 혹스 유전자와 생쥐의 대응 유전자는 동원유전자고요. 이 구분이 자동으로 나온다면 이 글의 목표는 달성된 겁니다.
정리하면
유전체는 계통의 자료일 뿐 아니라 진화 과정 자체가 기록된 문서입니다. 유전자 중복이 여분의 사본을 만들고, 그 사본들이 변이를 쌓아 유전자 가족을 이룹니다.
상동 유전자는 갈라놓은 사건에 따라 둘로 나뉩니다. 종분화로 갈라진 동원유전자와 중복으로 갈라진 부동유전자. 종의 계통을 논하려면 반드시 동원유전자끼리 비교해야 하고, 그러지 않으면 종이 갈라진 시점을 크게 부풀리게 됩니다. 유전자의 나무와 종의 나무는 다른 나무입니다.
한편 발생을 지휘하는 혹스 유전자처럼 거의 변하지 않은 채 널리 보존된 유전자들은, 공통 조상이 이미 그 도구를 갖고 있었음을 말해 줍니다. 다양성은 도구의 차이가 아니라 쓰는 방식의 차이에서 왔습니다.
그런데 "종이 갈라진 뒤 흐른 시간"이라는 표현을 방금 몇 번 썼죠. 서열 차이를 연도로 바꿀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립니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요, 그리고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요? 마지막 개념 분자시계와 3역에서 그 계산과 한계를 다루고, 나무라는 은유 자체가 흔들리는 지점까지 갑니다.
틀린 내용이나 더 궁금한 점이 있으면 문의하기로 알려 주세요. 확인한 뒤 고치고, 고친 날짜를 위에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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