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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바이러스의 증식 — 외피는 어디서 오는가

송준호(송쌤)송쌤생명과학입시연구소 대표

앞 글의 파지는 DNA만 주입하고 껍질은 바깥에 버렸습니다. 깔끔했죠. 그런데 숙주가 동물 세포가 되면 사정이 꽤 달라집니다.

달라지는 이유를 먼저 짚어 두면 나머지가 다 따라옵니다. 동물 세포에는 세포벽이 없고, 대신 막을 움푹 들여 무언가를 삼킬 수 있고, 핵이 따로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차이가 침입 방식·증식 장소·방출 방식을 모두 바꿔 놓습니다.

그리고 이 글의 주인공인 질문 하나. 외피는 바이러스가 만든 걸까요? 아닙니다. 숙주의 막을 뜯어 입은 것입니다. 이 사실 하나가 소독·전파·면역까지 전부 설명해 줍니다.

들어가는 길이 두 가지다

동물 바이러스의 침입은 외피가 있는지에 따라 갈립니다.

  • 막융합 — 외피 있는 바이러스의 주된 경로입니다. 외피에 박힌 당단백질이 숙주 세포막의 수용체와 결합하고, 그다음 외피와 세포막이 그대로 하나로 녹아 붙습니다. 둘 다 인지질 이중층이니 섞일 수 있어요. 그 결과 안에 들어 있던 뉴클레오캡시드(유전체+캡시드)가 세포질로 떨어집니다. 바이러스가 문을 여는 게 아니라, 자기 막을 숙주 막에 합쳐 버리는 방식이에요.
  • 세포내섭취 — 외피가 없는 바이러스가 주로 쓰는 경로이고, 외피 있는 바이러스 중에도 이 길로 가는 것이 많습니다. 바이러스가 수용체에 붙으면 세포가 그 자리를 안으로 오목하게 들여 입자를 소포째로 삼킵니다. 세포가 평소에 영양분이나 신호물질을 받아들이던 장치를 바이러스가 이용하는 거예요.

세포내섭취로 들어가면 바이러스는 소포 안에 갇힌 상태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일이 벌어집니다. 세포는 삼킨 소포를 산성으로 만들어 내용물을 분해하려 하는데, 많은 바이러스가 바로 그 산성 신호를 탈출 방아쇠로 씁니다. 산성이 되면 외피 당단백질의 모양이 바뀌면서 소포 막과 융합을 일으키고, 유전체가 세포질로 빠져나옵니다. 세포의 분해 장치가 오히려 문 열어 주는 열쇠가 되는 셈이에요.

그다음 공통 단계가 하나 더 있습니다. 파지에는 없는 단계예요.

탈캡시드 — 캡시드가 벗겨지고 유전체가 드러난다.

파지는 유전체만 들여보냈으니 벗을 게 없었습니다. 동물 바이러스는 입자 전체가 들어왔으니, 유전체를 쓰려면 껍질을 벗어야 합니다. 그래서 동물 바이러스의 증식 과정에는 부착 → 침입 → 탈외피·탈캡시드 → 유전체 복제와 단백질 합성 → 조립 → 방출이라는 여섯 단계가 들어갑니다.

파지와 비교해 두세요. 시험에서 둘을 섞어서 묻습니다. 파지는 DNA만 주입, 탈캡시드 없음, 캡시드는 세포 바깥에 남음. 동물 바이러스는 입자 전체가 들어감, 탈캡시드 있음, 껍질도 세포 안에서 처리됨. 그리고 파지가 세포벽을 뚫는 주사기 방식을 쓰는 건 숙주에 세포벽이 있어서입니다. 구조의 차이가 전략의 차이를 만든 거예요.

유전체가 무엇이냐에 따라 증식 방식이 갈린다

동물 바이러스에서 가장 다양한 부분이 여기입니다. 핵산 종류별로 숙주에게 요구하는 게 다르기 때문이에요.

유전체복제·발현 방식증식 장소
이중가닥 DNA숙주의 DNA 중합효소와 RNA 중합효소를 거의 그대로 쓸 수 있다주로 핵
단일가닥 DNA상보가닥을 먼저 만들어 이중가닥으로 바꾼 뒤 복제한다주로 핵
단일가닥 RNA — 전령 역할을 바로 하는 쪽들어가자마자 숙주 리보솜에 얹혀 번역된다. 유전체 자체가 mRNA다세포질
단일가닥 RNA — 전령의 상보가닥인 쪽먼저 상보적인 RNA를 만들어야 번역이 가능하다. 그래서 그 효소를 입자에 넣어 다닌다세포질
단일가닥 RNA — 역전사하는 쪽RNA를 주형으로 DNA를 만들어 숙주 염색체에 삽입한다세포질 → 핵

표의 RNA 줄들에서 공통으로 드러나는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숙주 세포에는 RNA를 주형으로 RNA를 만드는 효소가 없습니다.

왜 없는지 생각해 보세요. 전사는 DNA를 주형으로 RNA를 만드는 과정이고, 세포가 가진 RNA 중합효소는 전부 그 방향으로 설계돼 있습니다. RNA를 읽어 RNA를 베끼는 일은 세포가 할 필요가 없던 일이에요. 그래서 RNA 바이러스는 자기 유전체를 복제할 효소를 스스로 챙겨야 합니다. 입자 안에 효소 단백질을 넣어 들고 다니거나, 들어가서 가장 먼저 그 효소를 만들어 냅니다.

이게 두 가지 결과를 낳습니다. 하나는 숙주에 없는 효소이므로 약의 표적이 되기 좋다는 것 — 그 효소만 막으면 내 세포는 다치지 않고 바이러스만 멈출 수 있으니까요. 다른 하나는 이 효소가 오류가 많다는 것인데, 이 이야기는 신종 바이러스 글의 출발점이 됩니다.

단백질 합성은 어느 경우든 결국 숙주의 리보솜에서 일어납니다. 그리고 많은 바이러스가 유전체를 아끼기 위해 여러 단백질을 한 줄로 길게 번역한 뒤 가위로 잘라 쓰는 방식을 씁니다. 긴 소시지를 만들어 토막 내는 셈이에요. 유전자 하나로 여러 단백질을 얻으니 유전체를 줄일 수 있습니다.

외피는 어디서 오는가 — 출아

이제 이 글의 제목입니다. 외피 있는 바이러스가 어떻게 외피를 얻는지 순서대로 보겠습니다.

  • ① 당단백질이 만들어진다 — 외피에 박힐 바이러스 당단백질은 숙주의 소포체에 붙은 리보솜에서 만들어집니다. 막단백질이니까 세포가 자기 막단백질을 만들 때와 같은 경로를 탑니다.
  • ② 숙주 막으로 운반된다 — 소포체에서 골지체를 거쳐 소포에 실려 세포막에 박힙니다. 이 시점에서 숙주 세포막 일부에는 바이러스 단백질이 촘촘히 꽂혀 있습니다.
  • ③ 뉴클레오캡시드가 그 자리로 모인다 — 세포질에서 조립된 유전체-캡시드 덩어리가 바이러스 단백질이 박힌 막 안쪽에 달라붙습니다.
  • ④ 출아 — 그 자리에서 막을 밀고 바깥으로 불룩 솟아오르다가 끊어져 떨어집니다. 떨어져 나올 때 숙주 막을 한 겹 뒤집어쓴 상태가 되고, 그게 외피입니다.

그래서 외피의 정체는 이렇게 정리됩니다.

외피의 구성출처
인지질 이중층숙주 세포의 막 (세포막, 또는 바이러스에 따라 핵막·골지체 막)
박혀 있는 당단백질바이러스 유전자가 지정한 것

지질은 숙주 것, 단백질은 바이러스 것. 남의 옷을 입고 자기 명찰만 달고 나오는 셈입니다. 그래서 같은 바이러스라도 어떤 세포에서 나왔는지에 따라 외피의 지질 조성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그리고 중요한 차이가 하나 더 생깁니다. 출아는 세포를 터뜨리지 않습니다. 비눗방울이 하나씩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입자가 조금씩 방출되니까, 숙주 세포는 한동안 살아 있으면서 계속 바이러스를 뿜어낼 수 있어요. 세포가 당장 죽지 않는다는 건 증상이 뚜렷하지 않은 상태로 오래 전파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자주 틀립니다. "외피는 바이러스가 자기 막을 만든 것"이라고 쓰면 틀립니다. 바이러스는 막을 합성하는 능력이 없어요 — 앞서 본 대로 물질대사 자체를 하지 못하니까요. 그리고 외피는 세포막이 아닙니다. 선택적 투과도, 수송도, 신호 수용도 하지 않습니다. 그냥 뒤집어쓴 껍데기예요. 반대 방향 실수도 있습니다 — "모든 동물 바이러스는 외피가 있다"도 틀립니다. 외피 없이 캡시드만 가진 동물 바이러스가 많습니다.

막융합과 세포내섭취 두 가지 침입 방식, 증식 단계, 외피가 숙주의 막에서 떨어져 나오는 출아 과정을 단계로 보인 그림, 그리고 외피 유무가 소독과 건조 저항성으로 이어지는 비교표

외피는 숙주의 막에서 온다 — 지질은 숙주 것이고 당단백질만 바이러스 것이다 — 송쌤생명과학 자체 제작

외피가 있는지 없는지가 현실에서 만드는 차이

이 부분이 제가 수업에서 가장 공들여 설명하는 자리입니다. 구조의 차이가 생활 속 방역 수단의 차이로 바로 이어지니까요.

외피는 지질입니다. 지질은 비교적 약해요. 비누·세제·알코올 같은 것이 인지질 이중층을 흐트러뜨리고, 건조나 열에도 비교적 쉽게 망가집니다. 외피가 망가지면 그 안의 유전체가 멀쩡해도 감염력을 잃습니다. 당단백질이 수용체에 붙지 못하면 들어갈 방법이 없으니까요.

반대로 외피 없는 바이러스는 바깥이 단백질 캡시드입니다. 단단하게 맞물린 단백질 껍질이라 건조·온도 변화·산성에 훨씬 잘 견딥니다. 그래서 물체 표면이나 물속에서 오래 살아남고, 알코올만으로는 잘 죽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외피 있는 바이러스외피 없는 바이러스
가장 바깥숙주 유래 지질막 + 바이러스 당단백질단백질 캡시드
주된 침입 방식막융합, 또는 세포내섭취 후 소포 막과 융합세포내섭취
주된 방출 방식출아 — 세포를 죽이지 않고도 계속 방출 가능세포 파괴로 한꺼번에 방출되는 경우가 많다
환경 저항성약한 편 — 건조·열·비누·알코올에 비교적 쉽게 무력화강한 편 — 표면이나 물속에서 오래 버틴다
효과적인 대응손 씻기, 알코올 소독이 잘 통한다물과 비누로 물리적으로 씻어 내는 것, 환경 소독

손을 비누로 삼십 초 씻으라는 말이 왜 그렇게 강조되는지 이제 보이죠. 외피 있는 바이러스에는 비누가 외피를 직접 깨뜨리고, 외피 없는 바이러스에는 물로 씻어 내리는 물리적 제거가 작동합니다. 어느 쪽이든 손 씻기가 답이 됩니다. 알코올 손 소독제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는 것도 같은 표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궁금해지는 것. 외피가 내 세포의 막에서 왔다면, 면역계는 그걸 "내 것"으로 보고 넘기지 않을까요? 좋은 질문이고, 답은 박혀 있는 당단백질에 있습니다. 지질은 내 것이지만 그 위에 꽂힌 단백질은 명백히 바이러스 것이고, 림프구는 바로 그 단백질을 항원으로 알아봅니다. 체액성 면역이 만드는 항체도 대개 이 당단백질에 달라붙어 수용체 결합 자체를 방해하는 식으로 작동합니다. 백신이 겨냥하는 표적이 외피 당단백질인 경우가 많은 이유예요. 그리고 뒤집어 말하면, 이 당단백질이 변하면 기존 항체가 잘 안 먹힌다는 뜻이 됩니다. 이게 마지막 글의 주제입니다.

숙주 세포에 남는 상처

바이러스가 세포를 망가뜨리는 방식은 생각보다 여러 갈래입니다. 전부 "터뜨려서"는 아니에요.

  • 숙주 유전자 발현을 가로채기 — 리보솜과 재료를 바이러스 단백질 생산에 몰아 쓰면, 세포가 자기에게 필요한 단백질을 못 만듭니다. 서서히 기능을 잃습니다.
  • 막 구조 교란 — 대량의 출아로 세포막이 계속 뜯겨 나가고, 바이러스 단백질이 박힌 막끼리 붙어 세포가 여럿 융합해 거대한 덩어리가 되는 일도 있습니다.
  • 면역에 의한 손상 — 이게 의외의 지점인데, 증상의 상당 부분은 바이러스가 직접 낸 상처가 아니라 감염된 세포를 제거하려는 내 면역 반응이 만든 것입니다. 열, 염증, 몸살이 거기서 옵니다. 염증 반응이 왜 "방어인데 아프게 느껴지는지"가 여기서 연결됩니다.
  • 잠복 — 어떤 바이러스는 증식을 멈춘 채 숙주 세포에 오래 남아 있다가, 면역이 약해지거나 자극이 가해질 때 다시 증식을 시작합니다. 파지의 용원성 전략과 발상이 비슷하죠. 입술에 반복해서 돋는 수포, 어린 시절 수두를 앓은 뒤 성인기에 나타나는 대상포진이 이 유형의 예입니다.
쌤 한마디 — 이 글의 내용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파지는 안 들어가고 유전체만 넣는다, 동물 바이러스는 통째로 들어가서 벗는다, 그리고 나올 때 숙주 막을 입고 나온다"입니다. 저는 수업에서 외피를 "숙주 세포 담요 뒤집어쓰고 나오기"라고 부릅니다. 유치한 표현이지만 이걸로 기억하면 출아, 지질은 숙주 것 단백질은 바이러스 것, 그래서 비누에 약하다가 한 줄로 따라 나와요. 그리고 RNA 바이러스 이야기가 나오면 반드시 "숙주에는 RNA를 주형으로 RNA를 만드는 효소가 없다"를 먼저 떠올리세요. 그 한 문장에서 '효소를 들고 다닌다 → 오류가 많다 → 변이가 빠르다'가 전부 풀려 나옵니다.

정리하면

동물 바이러스는 파지와 달리 입자 전체가 세포 안으로 들어가고, 들어간 뒤에 캡시드를 벗습니다. 들어가는 길은 외피와 세포막이 녹아 붙는 막융합, 그리고 세포가 소포째로 삼키는 세포내섭취 두 가지입니다.

증식 방식은 유전체 종류가 정합니다. DNA 바이러스는 숙주 효소를 거의 그대로 쓸 수 있지만, RNA 바이러스는 숙주에 없는 효소(RNA를 주형으로 RNA를 만드는 효소)를 스스로 챙겨야 합니다. 단백질 합성은 어느 쪽이든 숙주 리보솜에서 일어납니다.

외피는 숙주의 막에서 유래합니다. 바이러스 당단백질이 숙주 막에 박히고, 뉴클레오캡시드가 그 자리를 밀고 출아해 떨어지면서 막을 한 겹 뒤집어쓰는 것입니다. 지질은 숙주 것, 당단백질은 바이러스 것이에요. 출아는 세포를 터뜨리지 않으므로 숙주가 살아 있는 동안 계속 방출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외피 있는 바이러스는 건조·열·비누·알코올에 비교적 약하고, 외피 없는 바이러스는 환경에서 오래 버팁니다. 구조가 소독법과 전파 방식을 정합니다.

이제 유전체 종류 중에서 가장 특별한 쪽으로 가 봅시다. RNA를 주형으로 DNA를 만드는 바이러스. 중심원리의 화살표를 거꾸로 돌리는 녀석입니다. 레트로바이러스와 HIV에서, 역전사가 정확히 무엇을 뒤집었고 그게 왜 치료를 어렵게 만드는지 보겠습니다.

틀린 내용이나 더 궁금한 점이 있으면 문의하기로 알려 주세요. 확인한 뒤 고치고, 고친 날짜를 위에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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