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자시계와 3역 — 시간을 재는 법, 그리고 나무가 흔들리는 자리
송준호(송쌤)송쌤생명과학입시연구소 대표
앞 글 끝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두 종이 갈라진 뒤 흐른 시간." 그런데 계통수는 원래 갈라진 순서만 말하는 그림이었잖아요. 순서를 어떻게 연도로 바꿀 수 있을까요?
그 방법이 분자시계(molecular clock)입니다. 이 글의 전반부는 그 시계를 다루고, 후반부에서는 이 챕터에서 계속 써 온 '나무'라는 은유 자체가 흔들리는 자리까지 갑니다. 챕터의 마지막이자, 어떤 의미로는 가장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분자시계의 원리 — 왜 시계처럼 도는가
논리를 한 단계씩 따라가 보겠습니다.
DNA에는 단백질의 기능을 바꾸는 자리도 있고, 바뀌어도 아무 영향이 없는 자리도 있습니다. 후자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중립 돌연변이라고 해요. 기능에 영향이 없으니 자연선택이 이걸 걸러 내지도, 밀어 주지도 않습니다.
선택이 손대지 않는다면, 이런 변화는 대체로 일정한 속도로 쌓여 갑니다. 그러면 두 계통이 갈라진 뒤 흐른 시간이 길수록 서열의 차이가 크게 벌어지겠죠. 거꾸로 쓰면 이렇게 됩니다. 서열 차이의 크기 → 갈라진 뒤 흐른 시간. 시계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까지로는 부족합니다. "차이가 크다"는 상대적인 말이지 연도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반드시 한 단계가 더 필요합니다.
보정 — 시계에 눈금을 매기는 일
시계를 쓰려면 눈금이 있어야 합니다. 이 작업을 보정(calibration)이라고 해요.
가장 흔한 방법은 화석을 쓰는 겁니다. 두 계통이 갈라진 시점이 화석 기록으로 어느 정도 알려진 짝을 몇 개 고릅니다. 그 짝들에 대해 서열 차이와 연대를 그래프에 찍으면 점들이 대략 직선 위에 놓이는데, 이 직선의 기울기가 "서열 차이 얼마당 몇 년"이라는 환산율입니다. 이제 연대를 모르는 다른 짝의 서열 차이를 이 직선에 대입하면 갈라진 시점이 나옵니다.
지질학적 사건을 눈금으로 쓰기도 합니다. 대륙이 갈라진 시점이 알려져 있고 그 때문에 두 무리가 분리됐다고 볼 근거가 있다면, 그 연대를 보정점으로 쓸 수 있어요.
HIV의 기원 — 분자시계가 실제로 한 일
분자시계의 쓸모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 준 사례가 HIV의 기원 추정입니다.
상황을 그려 보세요. 에이즈가 세상에 알려진 건 1980년대 초입니다. 그런데 바이러스가 언제부터 사람에게 들어와 있었는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목격자도, 기록도, 화석도 없고요.
여기서 쓸 수 있는 자료가 하나 있었습니다. 여러 해에 걸쳐 서로 다른 시점에 채취된 HIV 시료들입니다. HIV는 변이 속도가 아주 빨라서, 채취 시점이 다르면 서열도 눈에 띄게 다릅니다.
그래서 이렇게 했습니다. 가로축에 채취 연도, 세로축에 서열이 얼마나 갈라졌는지를 찍습니다. 점들이 직선을 이루면, 그 직선을 과거 쪽으로 연장해 서열 차이가 0이 되는 지점을 찾습니다. 모든 계통이 하나였던 시점, 즉 사람 집단 안에서 퍼지기 시작한 시점이죠.
그 지점이 1930년 무렵으로 나왔습니다. 세상에 알려지기 반세기 전부터 이미 사람 사이에서 퍼지고 있었다는 뜻이에요. 이후 방법과 자료가 개선되면서 추정치는 1920년대 쪽으로 조금 더 당겨졌는데, 연구마다 폭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 방법의 성격을 잘 보여 줍니다. 분자시계는 정확한 연도를 찍는 도구가 아니라 범위를 좁히는 도구입니다.
한계 — 이 시계는 잘 안 맞는다
학생들이 "분자시계"라는 이름 때문에 실제보다 훨씬 정밀한 장치로 상상하곤 합니다. 여기서 교정하고 갑니다.
- 속도가 유전자마다 다릅니다. 앞 글에서 본 혹스 유전자처럼 강하게 보존되는 유전자는 시계가 아주 느리게 갑니다. 반대로 기능 제약이 적은 부위는 빨리 가고요. 그래서 어떤 유전자를 쓰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지고, 재려는 시간 규모에 맞는 유전자를 골라야 합니다.
- 같은 유전자도 계통마다 속도가 다릅니다. 세대 길이, 대사 속도, 집단 크기 같은 사정이 변이가 쌓이는 속도에 영향을 줍니다. "일정한 속도"는 평균적인 경향이지 보장이 아니에요.
- 선택이 개입하면 어긋납니다. 중립이라는 전제 위에 선 계산인데, 어떤 시기에 그 부위에 선택압이 걸리면 전제가 깨집니다.
- 멀리 외삽할수록 오차가 커집니다. 이게 가장 큽니다. 보정에 쓴 화석의 연대 자체에 오차가 있고, 그 직선을 보정 범위 바깥으로 길게 늘릴수록 오차가 증폭돼요. 수억 년 전을 추정한 숫자는 상당한 폭을 안고 있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쌤 한마디 — 세특이나 보고서에 분자시계로 나온 연대를 쓸 거라면 반드시 두 가지를 같이 적으세요. 어떤 자료로 보정했는지와 추정 범위. "약 몇 년 전"이라고 단정적으로 쓴 문장은 읽는 사람이 바로 짚습니다. 반대로 "화석 보정 기준으로 몇 년 전에서 몇 년 전 사이로 추정된다"고 쓰면, 학생이 방법의 한계까지 이해하고 있다는 게 드러나요. 숫자보다 그 태도가 점수를 만듭니다.

시계는 돌지만, 눈금은 흔들린다 — 송쌤생명과학 자체 제작
2계에서 3역으로 — 계통 자료가 분류를 뒤집다
이제 후반부입니다. 분자 자료가 계통학에 들어와 일으킨 가장 큰 사건은, 생물 전체를 나누는 최상위 구분이 바뀐 일이었습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오래도록 동물과 식물이라는 2계 체계가 쓰였습니다. 현미경으로 보이는 것들이 늘어나면서 균계·원생생물계·원핵생물계가 더해져 5계 체계가 자리 잡았고요(1960년대). 여기서 원핵생물은 전부 한 계였습니다. 핵이 없다는 공통점으로 묶인 거죠.
그런데 1970년대에 워즈 연구진이 리보솜 RNA 서열을 여러 생물에서 비교하다가 이상한 결과를 만납니다. 한 계로 묶여 있던 원핵생물 안의 차이가, 원핵생물과 진핵생물 사이의 차이에 맞먹을 만큼 컸던 겁니다. 더 뜻밖이었던 건 방향이었어요. 그 무리 중 일부는 다른 세균보다 진핵생물 쪽에 더 가까웠습니다.
이 결과를 반영해 제안된 것이 3역(three domains) 체계입니다. 계보다 위에 '역'이라는 계급을 두고 생물 전체를 셋으로 나눕니다.
| 역 | 특징 | 눈여겨볼 점 |
|---|---|---|
| 세균(Bacteria) | 핵막 없음. 우리가 흔히 아는 원핵생물 대부분 | 가장 먼저 갈라진 갈래로 본다 |
| 고세균(Archaea) | 핵막 없음. 극한 환경에 사는 것이 많지만 그게 정의는 아님 | 전사·번역 기구 등은 진핵생물과 닮았다 |
| 진핵생물(Eukarya) | 핵막 있음. 원생생물·균류·식물·동물 | 고세균 쪽과 더 가까운 관계 |
여기서 앞 글의 개념이 그대로 쓰입니다. 예전의 '원핵생물계'는 서로 다른 두 역을 한 묶음에 넣은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묶음의 기준이 '핵이 없다'였는데, 이건 새로 생긴 특징이 아니라 원래 그랬던 상태, 즉 공유조상형질이에요. 조상형질로 묶은 무리는 분기군이 되지 못합니다. 3역 체계는 바로 이 문제를 바로잡은 결과입니다.
따라오는 오해도 하나 정리하죠. 고세균은 "원시적인 세균"이 아닙니다. 이름 때문에 더 오래되고 덜 발달한 것처럼 들리지만, 고세균 역시 다른 모든 현생 생물과 똑같은 시간을 진화해 온 별개의 역입니다. 첫 글의 원칙 그대로예요 — 가지 끝은 전부 현재입니다.
나무가 흔들린다 — 수평적 유전자 전달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유전자가 부모에서 자식으로, 위에서 아래로만 전해진다고 가정했습니다. 계통수를 나무로 그릴 수 있는 이유가 그 가정이에요. 가지는 갈라지기만 하지 다시 붙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실제 생물, 특히 원핵생물에서는 유전자가 옆으로도 건너갑니다. 계통이 전혀 다른 개체 사이에서도요. 이것이 수평적 유전자 전달(horizontal gene transfer)입니다. 세포가 환경의 DNA를 직접 받아들이기도 하고, 바이러스가 유전자를 옮겨 주기도 하고, 두 세포가 접합해 플라스미드를 주고받기도 합니다. 서로 다른 종의 세균 사이에서 항생제 내성 유전자가 빠르게 퍼지는 일이 바로 이 경로로 일어나죠.
계통학 입장에서 이건 성가신 정도가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 유전자마다 지나온 길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어떤 유전자로 계통수를 그리느냐에 따라 나무의 모양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앞 글의 "유전자의 나무와 종의 나무는 다르다"가 여기서 한층 더 심각해지는 겁니다.
- 가지가 갈라지기만 하는 구조로는 옆으로 건너간 사건을 그릴 수 없습니다. 나무라는 그림 형식 자체의 한계예요.
그리고 진핵생물의 기원 자체가 갈라짐이 아니라 합쳐짐이었을 가능성이 유력하게 논의됩니다. 미토콘드리아와 엽록체가 세포 안으로 들어온 세균에서 유래했다는 세포내공생이 그 대표적인 사건이고요. 그렇다면 생명의 밑동은 갈라지는 가지가 아니라 두 갈래가 만나 하나가 되는 고리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생명 전체의 계통을 '나무' 대신 그물이나 고리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계통수가 폐기된 건 아니에요. 수평 전달이 드문 무리, 특히 동물과 식물 안에서는 나무가 여전히 아주 잘 맞습니다. 다만 밑동으로 갈수록, 그리고 원핵생물 쪽으로 갈수록 나무는 근사치가 된다는 걸 알고 써야 합니다.
정리하면
분자시계는 중립 돌연변이가 대체로 일정한 속도로 쌓인다는 전제 위에서 서열 차이를 시간으로 환산하는 방법입니다. 화석이나 지질 사건으로 보정해야 연도가 나오고, HIV의 기원을 1930년 무렵으로 좁힌 것이 대표적인 성과입니다. 다만 속도가 유전자와 계통에 따라 달라지고 멀리 외삽할수록 오차가 커지므로, 범위를 좁히는 도구로 이해해야 합니다.
리보솜 RNA 서열 비교는 생물 최상위 분류를 3역 — 세균·고세균·진핵생물 — 으로 다시 그렸고, 고세균은 세균보다 진핵생물에 가깝습니다. '핵이 없다'는 조상형질로 묶은 원핵생물계가 분기군이 아니었다는 것이 그 핵심 근거였어요.
그리고 수평적 유전자 전달 때문에, 생명의 역사 전체를 하나의 나무로 그리는 일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챕터를 이렇게 끝내는 게 오히려 정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계통수는 진리의 기록이 아니라 지금 자료로 세운 최선의 가설이고, 그 가설을 언제 의심해야 하는지까지 아는 것이 이 단원의 끝입니다.
이 챕터를 처음부터 다시 훑고 싶다면 계통수 읽는 법으로 돌아가시고, 진화가 작동하는 원리 쪽이 흔들린다면 다윈과 자연선택과 진화의 증거를 먼저 보고 오세요.
틀린 내용이나 더 궁금한 점이 있으면 문의하기로 알려 주세요. 확인한 뒤 고치고, 고친 날짜를 위에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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