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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은 어떤 유전자가 고장 난 병인가 — 원암유전자와 종양억제유전자

송준호(송쌤)송쌤생명과학입시연구소 대표

앞서 세포 주기 조절 시스템을 다룰 때, 암세포는 성장인자가 없어도 분열하고 밀도 의존성 억제도 듣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건 증상이지 원인이 아니에요. 브레이크가 안 듣는다면, 정확히 어느 부품이 어떻게 망가진 걸까요. 이번 글은 그 고장이 유전자 수준에서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봅니다.

암은 유전자의 병이지만, 대개 유전되는 병은 아니다

암은 유전자의 병입니다. 세포 분열을 지시하고 멈추는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쌓여서 생기니까요. 그런데 제가 수업에서 이 말을 하면 학생들 절반은 곧바로 "그럼 부모한테 물려받는 거예요?"라고 되묻습니다. 아닙니다.

대부분의 암은 체세포에서 일어난 돌연변이 때문에 생깁니다. 피부세포 하나, 대장 상피세포 하나에서 생긴 변이는 그 세포의 후손에게만 전달되고, 정자·난자로는 넘어가지 않아요. 그래서 자식에게 유전되지 않습니다. 유전되는 건 암 자체가 아니라, 뒤에서 볼 "걸리기 쉬운 체질" 쪽입니다.

그럼 그 체세포 돌연변이는 어디서 오느냐 — 자외선, 담배 연기 속 발암물질, 방사선, 그리고 복제할 때 그냥 생기는 오류입니다. DNA 중합효소가 교정 기능을 갖고 있고 수선 효소들이 뒤를 봐주는데도 완벽하지는 않아요. 세포 하나가 수십 년간 수천 번 분열하는 동안 그물을 빠져나가는 오류가 반드시 생깁니다.

액셀 — 원암유전자가 종양유전자가 될 때

원암유전자(proto-oncogene)는 우리 몸의 정상 유전자입니다. 이름이 무섭게 생겼지만 나쁜 유전자가 아니에요. 성장인자, 성장인자 수용체, 그 아래로 신호를 넘기는 단백질, 세포 주기를 켜는 전사인자 — 정상적으로 분열을 촉진하는 데 꼭 필요한 유전자들이 전부 여기 해당합니다. 상처가 아물려면 이 유전자들이 제대로 일해야 하죠.

문제는 이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겨 필요 이상으로 강하게, 혹은 꺼지지 않고 작동하게 될 때입니다. 이렇게 변한 형태를 종양유전자(oncogene)라고 불러요. 액셀 페달이 바닥에 붙어버린 자동차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원암유전자가 종양유전자로 바뀌는 길은 크게 셋입니다.

  • 유전자 증폭 — 그 유전자의 복사본 수 자체가 여러 개로 늘어납니다. 단백질이 정상보다 훨씬 많이 만들어져요.
  • 전좌·재배열 — 유전자가 다른 염색체의 강한 프로모터 옆으로 옮겨갑니다. 유전자 자체는 멀쩡한데 전사가 폭주하죠.
  • 점돌연변이 — 염기 하나가 바뀌어 아미노산 한 자리가 달라집니다. 그 결과 단백질이 꺼지지 않는 스위치가 돼요.

세 번째 경로의 교과서적인 예가 ras입니다. Ras 단백질은 성장인자 수용체에서 넘어온 신호를 아래로 전달하는 중계기인데, 평소엔 GTP를 붙잡아 켜졌다가 그 GTP를 스스로 분해해서 꺼집니다. 신호전달 경로에서 배운, 켜짐과 꺼짐이 짝을 이루는 그 구조예요.

그런데 ras 유전자에 특정 점돌연변이가 생기면 이 단백질이 GTP를 분해하지 못합니다. 켜진 채로 굳어버리는 거죠. 위쪽에서 성장인자가 오든 말든 아래로는 "분열하라"는 신호가 계속 흘러갑니다. 사람의 암 가운데 약 30%에서 ras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발견됩니다.

여기서 시험에 자주 나오는 포인트 하나. 종양유전자는 두 대립유전자 중 하나만 망가져도 효과가 나타납니다. 고장 난 액셀 하나만 있어도 차는 튀어나가니까요. 유전학 용어로는 우성적으로 작용한다고 말합니다.

브레이크 — 종양억제유전자를 잃을 때

종양억제유전자(tumor-suppressor gene)는 정반대입니다. 이 유전자들이 만드는 단백질은 분열을 멈추게 하거나, 손상된 DNA를 수선하거나, 세포끼리 붙어 있게 해서 함부로 퍼지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니 여기서 문제가 되는 건 과활성이 아니라 기능 상실이에요.

가장 유명한 게 p53입니다. p53 단백질은 전사인자로, DNA에 손상이 감지되면 활성화돼서 세 가지 일을 지휘합니다.

  • Cdk를 억제하는 단백질(p21)의 전사를 켜서 G1 체크포인트에서 세포 주기를 멈춥니다. 손상된 DNA를 그대로 복제하지 못하게 시간을 버는 거죠.
  • DNA 수선에 관여하는 유전자들의 발현을 올립니다.
  • 수선이 도저히 안 되면 아폽토시스를 유도해 그 세포를 아예 자살시킵니다.

망가진 세포 하나를 살리는 것보다 개체 전체를 지키는 게 낫다는 판단을 세포 수준에서 내리는 셈입니다. 그래서 p53에는 "유전체의 수호자(guardian of the genome)"라는 별명이 붙었어요. 사람의 암 가운데 절반 이상에서 p53 유전자의 돌연변이나 결손이 발견됩니다.

브레이크는 액셀과 달리 두 대립유전자가 모두 망가져야 사라집니다. 브레이크가 한쪽만 남아 있어도 차는 어느 정도 서니까요. 유전학적으로 열성적으로 작용한다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쌤 한마디 — p53은 1993년 《사이언스》가 뽑은 "올해의 분자"였습니다. 유전자 하나가 학술지 표지를 장식할 만큼 화제였다는 건, 그만큼 여러 종류의 암에서 반복해서 같은 유전자가 망가져 있는 게 발견됐다는 뜻이에요. 참고로 p53의 "53"은 이 단백질의 겉보기 분자량(약 53 kDa)에서 온 이름입니다. 무슨 심오한 뜻이 있는 게 아니라 그냥 크기입니다.

원암유전자가 종양유전자로 바뀌는 세 경로와 종양억제유전자 상실, 그리고 대장암의 다단계 발암 모델

액셀(원암유전자)과 브레이크(종양억제유전자)가 고장 나는 방식, 그리고 돌연변이가 쌓여 암이 되는 과정 — 송쌤생명과학 자체 제작

왜 돌연변이 하나로는 암이 되지 않을까

지금까지 얘기를 들으면 "그럼 ras 하나만 고장 나도 암이겠네"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액셀 하나가 고장 나도 브레이크가 여러 겹 남아 있으면 세포는 결국 멈추거나 스스로 죽습니다. 암이 되려면 액셀 고장과 브레이크 상실이 여러 개 겹쳐야 합니다. 이걸 다단계 발암 모델이라고 부릅니다.

가장 잘 연구된 사례가 대장암입니다. 대장 내시경으로 조직을 단계별로 떼어내 비교할 수 있어서, 어느 시점에 어떤 유전자가 망가지는지를 순서대로 추적할 수 있었거든요.

구분원암유전자 → 종양유전자종양억제유전자
정상일 때 역할분열을 촉진 (액셀)분열을 억제·수선·자살 유도 (브레이크)
암을 일으키는 변화기능 항진 — 과발현·항상 활성기능 상실 — 단백질이 안 만들어지거나 못 씀
대립유전자 조건하나만 망가져도 됨 (우성적)둘 다 망가져야 함 (열성적)
대표 예ras, mycp53, RB, APC, BRCA1·BRCA2

여기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질문이 있죠. 왜 암은 나이가 들수록 급격히 늘어날까? 답이 바로 위에 있습니다. 돌연변이 여러 개가 같은 한 세포 계열에 우연히 다 모여야 하는데, 그런 일이 벌어지려면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발생률 곡선이 나이에 따라 완만하게가 아니라 가파르게 치솟는 모양인 것 자체가, 암이 단일 사건이 아니라 누적 사건이라는 증거입니다.

그럼 "유전되는 암"이란 건 뭘까

가족 중에 같은 암 환자가 여러 명 있는 경우가 분명히 있습니다. 이때 유전되는 건 암이 아니라 이미 한쪽이 망가진 대립유전자예요.

정상인은 종양억제유전자 두 벌이 다 멀쩡하니까 암이 되려면 같은 세포에서 두 번의 사고가 나야 합니다. 그런데 태어날 때부터 한쪽이 고장 난 채로 시작하면, 남은 한쪽만 망가지면 되죠. 확률이 비교할 수 없이 올라갑니다. 이 논리를 1971년에 알프레드 크누드슨이 소아 안구 종양인 망막모세포종의 발병 나이 분포를 분석해 제안했고, 2회 타격 가설(two-hit hypothesis)이라 부릅니다. 유전형 환자는 대개 양쪽 눈에 어린 나이에 생기고, 비유전형은 한쪽 눈에 더 늦게 생긴다는 관찰이 결정적이었어요.

BRCA1·BRCA2도 같은 방식입니다. 이 두 유전자는 원래 DNA 이중가닥 절단을 수선하는 데 관여하는 종양억제유전자인데, 한쪽에 결함이 있는 변이를 물려받은 사람은 유방암·난소암 위험이 크게 올라갑니다. 다만 위험이 올라가는 것이지 발병이 정해진 것은 아니라는 점을 꼭 구분해야 해요. 나머지 한쪽에 사고가 나야 비로소 시작되니까요.

바이러스가 암을 일으키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짧게. 일부 바이러스는 자기 유전체를 사람 세포의 DNA에 끼워 넣으면서 위의 두 장치를 직접 건드립니다. 자궁경부암과 인유두종바이러스(HPV)의 관계가 대표적이고, B형·C형 간염바이러스의 만성 감염이 간암 위험을 크게 올리는 것도 잘 알려져 있어요. HPV 백신과 B형 간염 백신이 "암 예방 백신"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감염을 막으면 그 경로로 시작되는 발암을 애초에 차단할 수 있으니까요.

여기까지가 유전자 발현 조절 단원의 마지막입니다. 다음 장부터는 시선이 완전히 바뀌어요. 지금까지는 세포가 DNA로 무엇을 하는지를 봤다면, 다음은 사람이 DNA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 DNA를 자르고 붙이고 읽는 기술로 넘어갑니다.

틀린 내용이나 더 궁금한 점이 있으면 문의하기로 알려 주세요. 확인한 뒤 고치고, 고친 날짜를 위에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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