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이는 왜 남고 완벽은 왜 없는가 — 균형 선택과 진화의 한계
송준호(송쌤)송쌤생명과학입시연구소 대표
앞 글을 끝내고 나면 이상한 느낌이 남습니다. 방향성 선택은 분포를 한쪽으로 밀고, 안정화 선택은 양쪽 끝을 깎아 냅니다. 선택은 대개 변이를 줄이는 쪽으로 작동해요.
그런데 실제 집단을 들여다보면 변이가 넘칩니다. 수십억 년 동안 선택이 돌았는데도 왜 여전히 다양할까요? 그리고 그렇게 오래 다듬었으면 완벽한 생물이 나왔어야 할 텐데, 왜 사람의 허리는 아프고 무릎은 닳을까요?
이 글은 그 두 질문에 답합니다. 이 챕터의 마지막이자, 진화를 오해 없이 이해했는지가 갈리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변이를 지키는 힘 — 균형 선택
선택이 항상 변이를 줄이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조건에서는 선택이 오히려 두 개 이상의 대립유전자를 집단에 계속 남겨 둡니다. 이런 작동 방식을 균형 선택(balancing selection)이라 하고, 그 결과로 유지되는 상태를 다형성이라고 합니다.
균형 선택이 일어나는 방식은 크게 둘입니다.
① 이형접합자 우세 — 겸형적혈구와 말라리아
이름 그대로, 이형접합자의 적응도가 두 동형접합자보다 높은 경우입니다. 가장 유명한 사례가 겸형적혈구 빈혈증이에요.
헤모글로빈 유전자에 염기 하나가 바뀐 돌연변이가 있습니다. 정상 대립유전자를 A, 변이 대립유전자를 S라 하면 세 가지 유전자형이 나오죠.
| 유전자형 | 적혈구 상태 | 말라리아 저항성 | 적응도(말라리아 유행 지역) |
|---|---|---|---|
| AA | 정상 | 낮다 | 중간 |
| AS | 대체로 정상, 증상 경미 | 높다 | 가장 높다 |
| SS | 겸형적혈구 빈혈증 | — | 가장 낮다 |
말라리아가 유행하지 않는 지역이라면 S 대립유전자는 순전히 해롭기만 합니다. SS는 심한 빈혈을 겪고 AS도 이득이 없으니, 선택이 S를 꾸준히 깎아 내 빈도가 아주 낮게 유지돼요.
그런데 말라리아가 흔한 지역에서는 계산이 달라집니다. AS 이형접합자는 말라리아로 중증에 이르거나 사망할 위험이 뚜렷하게 낮습니다. 그래서 AA보다 살아남아 자손을 남길 확률이 높아져요. 결과적으로 AS가 가장 유리한 유전자형이 됩니다.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AS가 아무리 유리해도 AS만으로 이루어진 집단은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AS × AS 교배에서 자손은 AA : AS : SS = 1 : 2 : 1로 나오니까요. 이형접합자가 유리하다는 것은 매 세대 불리한 동형접합자도 함께 태어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두 대립유전자가 모두 집단에 남고, 빈도가 어느 중간값 근처에서 균형을 이룹니다.
숫자로 확인해 봅시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일부 지역에서 S 대립유전자 빈도가 0.2 수준까지 올라가는 것이 보고되어 있습니다. 하디-바인베르크로 계산하면,
- q = 0.2 이므로 p = 1 − 0.2 = 0.8
- AS(이형접합자) = 2pq = 2 × 0.8 × 0.2 = 0.32 → 약 32%
- SS(발병자) = q² = 0.2 × 0.2 = 0.04 → 약 4%
집단의 약 3분의 1이 AS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심각한 유전병의 대립유전자가 이만큼 흔하게 유지된다는 건, 그것을 붙잡아 두는 힘이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예요. 바로 이 지점이 하디-바인베르크를 귀무가설로 쓰는 실전 예시입니다. "아무 일도 없다면 이렇게 흔할 리가 없다"는 판단이 먼저 서고, 거기서 말라리아라는 선택압을 찾아 들어간 거니까요.
그리고 여기서 학생들이 꼭 틀리는 지점 하나. "이형접합자 우세"는 이형접합이 우성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우성·열성은 표현형이 드러나는 방식의 문제이고, 이형접합자 우세는 적응도가 가장 높다는 뜻이에요. 완전히 다른 층위의 말입니다. 겸형적혈구 형질 자체는 여전히 열성 유전병으로 가계도 분석에서 다루는 그 방식으로 유전됩니다.
② 빈도 의존 선택 — 드물수록 유리해질 때
두 번째 방식은 더 미묘합니다. 어떤 표현형의 적응도가 그 표현형이 집단에서 얼마나 흔한가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예요. 대개 드문 쪽이 유리해집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아프리카 탕가니카호에 사는 비늘을 먹는 물고기입니다. 이 물고기는 다른 물고기 옆구리에 달려들어 비늘을 뜯어 먹는데, 입이 왼쪽으로 비뚤어진 개체와 오른쪽으로 비뚤어진 개체가 있어요. 왼쪽 입은 먹잇감의 오른쪽 옆구리를, 오른쪽 입은 왼쪽 옆구리를 공격합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일이 벌어집니다. 왼쪽 입 개체가 많아지면 먹잇감 물고기들이 오른쪽 옆구리를 경계하게 되고, 그러면 드물었던 오른쪽 입 개체가 유리해집니다. 오른쪽 입이 늘어나면 다시 반대로 뒤집히고요. 그래서 두 유형의 비율이 1:1 근처에서 계속 오르내리며 둘 다 사라지지 않습니다.
원리를 한 줄로 쓰면 이렇습니다. 흔해지면 불리해지고, 드물어지면 유리해진다. 이런 음성 되먹임이 걸리면 어느 한쪽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요.
숙주와 병원체의 관계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어떤 저항성 유전자형이 집단에서 흔해지면 병원체 쪽에서 그것을 뚫는 유형이 퍼지고, 그러면 드물었던 다른 저항성 유형이 유리해집니다. 면역 관련 유전자에 유난히 많은 대립유전자가 유지되는 이유 중 하나가 이겁니다.
| 이형접합자 우세 | 빈도 의존 선택 | |
|---|---|---|
| 유리한 것 | 이형접합 유전자형 | 지금 드문 표현형 |
| 적응도가 달라지는 이유 | 유전자형 자체의 성질 | 집단 내 빈도(상황) |
| 결과 | 두 대립유전자가 중간 빈도에서 균형 | 비율이 계속 오르내리며 공존 |

이형접합자가 유리하면 불리한 대립유전자도 남는다 — 송쌤생명과학 자체 제작
그래서 자연선택은 완벽을 만들지 못합니다 — 네 가지 이유
이제 두 번째 질문입니다. 선택이 이렇게 오래 다듬었는데 왜 생물은 완벽하지 않을까요? 이유는 네 가지로 정리됩니다.
① 선택은 있는 것을 개조할 뿐입니다 (역사적 제약).
진화는 백지에서 설계하지 않습니다. 조상이 가지고 있던 구조를 조금씩 변형할 수 있을 뿐이에요. 그래서 상동기관이 존재합니다. 사람의 팔, 고래의 지느러미, 박쥐의 날개는 모두 같은 뼈 구성을 돌려쓴 결과죠.
사람의 허리와 무릎 문제가 여기서 나옵니다. 네 발로 걷던 조상의 골격을 이어받은 상태에서 두 발로 서는 방향으로 개조된 것이기 때문에, 척추와 무릎에 원래 설계에 없던 하중이 걸립니다. 새로 설계했다면 이렇게 만들지 않았을 구조인데, 진화는 다시 시작할 수 없습니다.
② 적응은 언제나 타협입니다.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내놓아야 합니다. 생물은 한 가지 일만 하는 기계가 아니니까요.
- 사람의 골반은 직립 보행에 적합할수록 출산에는 불리해집니다. 두 요구가 정면으로 충돌하고, 실제 골반은 그 사이 어딘가의 절충안이에요.
- 공작 수컷의 꼬리는 짝짓기에 유리하지만 생존에는 불리합니다. 앞 글에서 본 성적 선택이 만든 전형적인 타협이죠.
- 두꺼운 껍데기는 포식자를 잘 막지만 무겁고 자원이 많이 들며 움직임을 느리게 합니다.
그래서 모든 면에서 최고인 생물은 원리상 불가능합니다. 자원과 시간과 물리 법칙이 유한하니까요.
③ 필요한 변이가 반드시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선택은 이미 존재하는 변이 중에서만 고릅니다. 새로운 재료를 주문 제작할 수 없어요. 돌연변이는 무작위로 일어나고, 그 집단에 딱 맞는 대립유전자가 마침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환경이 급격히 바뀌었을 때 어떤 집단은 적응하고 어떤 집단은 멸종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적응한 쪽이 더 훌륭해서가 아니라 마침 쓸 수 있는 변이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에요. 그리고 유전적 부동으로 변이를 잃은 작은 집단은 이 선택지 자체가 줄어든 상태가 됩니다. 대초원 닭이 서식지를 늘려 줘도 회복되지 않았던 이유죠.
④ 우연이 계속 끼어듭니다.
유리한 대립유전자를 가진 개체가 번식 전에 우연히 죽을 수 있습니다. 작은 집단에서는 유전적 부동이 적응도와 무관하게 빈도를 흔들고, 창시자 효과는 새 집단의 출발점을 임의로 정해 버려요. 환경 자체도 해마다 오르내립니다.
그래서 가장 유리한 대립유전자가 반드시 고정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선택은 확률을 기울일 뿐 결과를 확정하지 않아요.
이 넷을 한 문장으로 묶으면 이렇습니다. 자연선택은 절대적으로 완벽한 것을 만드는 과정이 아니라, 그때 있던 것들 중 상대적으로 나은 쪽을 남기는 과정입니다. 기준은 "최고"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경쟁자보다 나은가"뿐이에요.
쌤 한마디 — 세특이나 서술형에서 "~하기 위해 진화했다", "더 완벽하게 진화했다" 같은 문장을 쓰면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감점 요소가 됩니다. 대신 이렇게 쓰세요. "주어진 조건에서 상대적으로 더 많은 자손을 남긴 형질의 빈도가 높아진 결과". 길지만 이게 정확합니다. 그리고 이 글의 네 가지 제약은 진화를 반박하는 근거가 아니라 진화의 작동 방식이 남긴 흔적이라는 점도 기억하세요. 완벽하게 설계된 것처럼 보이지 않는 구조야말로, 설계가 아니라 개조의 역사를 보여 주는 증거입니다.
정리하면
선택이 늘 변이를 깎아 내는 것은 아닙니다. 균형 선택은 두 대립유전자를 집단에 함께 남깁니다. 이형접합자 우세는 이형접합의 적응도가 가장 높은 경우로 겸형적혈구와 말라리아가 대표 사례이고, 이때 매 세대 불리한 동형접합자도 함께 태어나기 때문에 두 대립유전자가 모두 유지됩니다. 빈도 의존 선택은 드문 쪽이 유리해지는 음성 되먹임으로, 비율이 오르내리며 둘 다 사라지지 않습니다.
자연선택이 완벽한 생물을 만들지 못하는 이유는 넷입니다. ① 있는 구조를 개조할 뿐이고(역사적 제약) ② 적응은 언제나 타협이며 ③ 필요한 변이가 반드시 생기지는 않고 ④ 우연이 계속 끼어들기 때문입니다.
이것으로 Ch.23이 끝납니다. 변이의 근원에서 시작해 하디-바인베르크라는 기준선을 세우고, 빈도를 바꾸는 세 힘을 본 뒤, 선택이 작동하는 모양과 그 한계까지 왔어요. 이 챕터 전체가 한 집단 안에서 대립유전자 빈도가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아직 대답하지 않은 질문이 남아 있습니다. 빈도가 아무리 변해도 그건 여전히 같은 종 안의 일이에요. 그렇다면 하나였던 종이 둘로 갈라지는 일은 어떻게 일어날까요? 분단성 선택에서 잠깐 스쳤던 그 질문이, 다음 챕터 종분화의 주제입니다.
틀린 내용이나 더 궁금한 점이 있으면 문의하기로 알려 주세요. 확인한 뒤 고치고, 고친 날짜를 위에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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