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생 유전자와 방향 없는 진화 — 큰 변화는 어디서 오고, 어디로도 가지 않는다
송준호(송쌤)송쌤생명과학입시연구소 대표
앞 글을 끝내면 계산이 하나 안 맞습니다. 대멸종 뒤의 적응 방산은 지질학적으로 짧은 시간에 일어나는데, 그 사이에 몸 구조가 크게 달라집니다. 다리가 길어지고, 몸이 커지고, 부속지의 쓰임이 바뀌어요.
그런데 몸 구조를 하나 바꾸려면 관련 유전자가 수백 개는 필요해 보입니다. 그 유전자들이 전부 새로 생기려면 시간이 한참 모자랄 텐데요. 답은 새로 만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미 있는 유전자를 언제·어디서·얼마나 오래 켤지만 바꿔도 몸은 크게 달라집니다. 이 글의 전반부가 그 이야기고, 후반부는 이 단원 전체를 닫는 이야기입니다.
발생은 순서와 타이밍의 프로그램이다
한 개체의 모든 세포는 같은 유전체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세포는 뼈가 되고 어떤 세포는 신경이 돼요. 차등적 유전자 발현 때문입니다. 어느 위치의 세포가, 발생의 어느 시점에, 어떤 유전자를 켜느냐가 몸의 형태를 만듭니다.
그러니 형태를 바꾸는 방법은 두 가지예요.
- 유전자 자체(코딩 서열)를 바꾸는 것 — 단백질의 기능이 달라집니다. 다만 그 단백질이 여러 곳에서 쓰이고 있다면 한 군데를 고치려다 다른 데까지 망가집니다.
- 언제·어디서 켤지(조절 서열)를 바꾸는 것 — 단백질은 그대로 두고 발현되는 시점·위치·양만 바꿉니다. 부작용의 범위가 좁아요.
이 중 큰 형태 변화에 더 자주 관여한 쪽은 조절 서열이라는 증거가 계속 쌓이고 있습니다. 여러 동물이 거의 같은 유전자 목록을 가지고도 완전히 다른 몸을 갖는 이유가 여기 있어요. 비교 유전체학에서 본 대로, 사람과 다른 동물의 차이는 유전자 목록의 차이보다 발현 패턴의 차이로 설명되는 부분이 큽니다.
이소시성 — 시간표만 바꿔도 모양이 바뀐다
이소시성(heterochrony)은 발생 과정에서 특정 사건의 속도나 시기가 달라지는 것을 말합니다. 만드는 부품은 같은데 공정 순서와 타이밍만 바꾸는 셈이에요.
가장 이해하기 쉬운 예가 손발의 모양입니다. 척추동물의 발은 처음에 손가락 사이가 붙은 주걱 모양으로 만들어지고, 그다음 손가락 사이 세포가 예정된 세포 사멸로 제거되면서 갈라집니다. 이 사멸이 덜 일어나거나 더 일찍 멈추면 물갈퀴가 남습니다. 새 유전자가 필요한 게 아니라 이미 있는 프로그램의 강도와 시점만 달라진 거예요.
또 하나는 유형성숙입니다. 몸의 성장 속도에 비해 생식 기관의 성숙이 빨라지면, 어린 시절의 형질을 유지한 채로 번식이 가능한 성체가 됩니다. 물속에서 사는 일부 도롱뇽은 다른 종이라면 변태 때 잃는 겉아가미를 그대로 지닌 채 성체가 되어 번식해요. 육상으로 올라갈 필요가 없는 환경에서는 굳이 변태하지 않는 쪽이 유리했던 겁니다.
사람과 다른 유인원의 두개골 차이도 이 틀로 설명합니다. 어린 개체의 두개골은 서로 꽤 닮아 있는데, 자라는 동안 각 부위의 성장 속도가 다르게 적용되면서 성체의 모습이 갈라집니다. 사람은 턱과 얼굴 앞쪽이 상대적으로 덜 자라고 뇌머리뼈가 크게 유지되는 쪽으로 성장 비율이 기울어 있어요.
여기서 얻을 감각은 이겁니다. 눈에 보이는 형태 차이가 크다고 해서 유전적 변화도 그만큼 클 필요는 없습니다. 발생 프로그램은 타이밍 하나에 여러 결과가 줄줄이 딸려 나오는 구조라서, 작은 입력 변화가 크게 증폭됩니다.
호메오 유전자 — 어디에 무엇을 놓을지를 정하는 스위치
타이밍이 언제라면, 어디를 정하는 장치도 있습니다. 호메오 유전자가 그것이고, 그중 동물의 앞뒤 축을 따라 몸 부위의 정체성을 지정하는 무리를 흔히 Hox 유전자라고 부릅니다.
이 유전자들의 산물은 전사 인자입니다. 스스로 다리나 더듬이를 만드는 게 아니라, 그 자리에서 어떤 구조를 만들 유전자 집단을 켤지를 지시해요. 그래서 이 유전자의 발현 영역이 어긋나면 엉뚱한 자리에 엉뚱한 기관이 만들어집니다. 곤충에서 더듬이가 나야 할 자리에 다리가 생기는 돌연변이가 고전적인 예입니다.
대진화에서 중요한 대목은 여기입니다. Hox 유전자 자체는 동물 전반에 놀라울 만큼 잘 보존돼 있습니다. 곤충과 척추동물이 상당히 닮은 유전자를 씁니다. 달라진 것은 유전자가 아니라 발현 영역의 경계예요.
- 몸통 부위를 지정하는 Hox 발현 영역이 앞뒤로 길게 확장되면, 같은 형태의 척추마디가 길게 반복되는 몸이 나옵니다. 다리 없이 긴 몸을 가진 척추동물의 체형이 이런 방식으로 설명됩니다.
- 배 쪽 부속지의 형성을 억제하는 Hox 산물의 발현 범위가 달라지면, 같은 절지동물 계통 안에서도 부속지가 달린 마디의 수가 달라집니다.
그리고 이런 조절 유전자 자체가 늘어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유전자 중복이 일어나면 사본 하나는 원래 일을 계속하고 다른 사본은 새 역할을 맡을 여유가 생겨요. 조절 유전자 집합이 넓어질수록 만들 수 있는 몸의 설계 폭도 넓어집니다. 앞 글에서 캄브리아기의 몸 구조 다양화를 이야기할 때 나온 요소가 이겁니다.
마지막으로 조절 서열 변화의 힘을 보여 주는 잘 알려진 사례 하나. 어떤 물고기 종에서 바다 집단은 골반 가시를 갖고 담수 집단은 잃는 일이 여러 호수에서 반복해 일어났는데, 원인은 가시 형성에 관여하는 유전자 자체의 고장이 아니라 그 유전자를 골반 부위에서 켜 주던 조절 부위의 변화였습니다. 유전자는 다른 곳에서 여전히 쓰이니 부작용 없이 한 부위만 바뀐 거예요. 같은 방향의 변화가 여러 집단에서 독립적으로 반복된 것도 함께 기억해 두세요. 진화가 우연의 일회성 사건만은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 바뀌는 것 | 이름 | 결과 |
|---|---|---|
| 발생 사건의 속도·시기 | 이소시성 | 물갈퀴 유지, 유형성숙, 부위별 성장 비율 차이 |
| 조절 유전자의 발현 영역 | 공간적 발현 변화 | 척추마디 반복 수, 부속지가 달리는 위치의 변화 |
| 특정 부위용 조절 서열 | 조절 서열 변화 | 한 부위의 구조만 선택적으로 상실·변형 |

시간표만 바꿔도 모양이 바뀐다 — 송쌤생명과학 자체 제작
그런데 진화는 어디로 가는가 — 아무 데로도 가지 않습니다
여기까지 오면 마지막 질문이 남습니다. 단세포에서 다세포로, 단순한 몸에서 복잡한 몸으로 왔으니 진화에는 방향이 있는 것 아니냐는 것.
이 단원에서 반드시 고쳐야 할 오해가 이겁니다. 진화에는 지향하는 목적이 없습니다.
첫째, 자연선택은 앞을 보지 못합니다. 자연선택은 지금 이 환경에서 더 많이 남기는 쪽을 고를 뿐이에요. 100만 년 뒤에 유리할 형질을 미리 준비해 둘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필요해서 생겼다"는 표현은 항상 틀립니다. 변이가 먼저 있었고, 그 환경이 그 변이를 남긴 겁니다.
둘째, 진화는 새로 설계하지 않고 있는 것을 땜질합니다. 새 기관은 기존 구조의 용도가 바뀌며 만들어집니다. 앞 글에서 본 포유류 중이뼈가 턱뼈에서 온 것처럼요. 그래서 생물의 몸에는 공학적으로 보면 이상한 구조가 남습니다. 사람의 몸만 해도 네발로 걷던 골격을 두 발 자세로 전용한 탓에 허리와 무릎에 무리가 걸리고, 척추동물의 눈은 시신경이 망막 앞을 가로질러 나가느라 맹점이 생깁니다. 설계자라면 하지 않을 선택들이 남아 있다는 것이 오히려 진화의 증거입니다.
셋째, "더 고등한 생물"이라는 말에는 기준이 없습니다. 무엇을 기준으로 등급을 매길까요. 몸이 복잡한 정도? 그렇다면 기생 생활을 하며 구조가 단순해진 계통은 퇴화한 걸까요. 그 단순화는 그 환경에서 명백히 유리했습니다. 개체 수와 생물량, 서식 환경의 폭, 살아온 기간으로 따지면 가장 성공적인 생물은 원핵생물입니다. 기준을 바꾸면 순위가 바뀌는 등급은 등급이 아니에요.
넷째, 계통수는 사다리가 아닙니다. 이게 시험에서도 가장 많이 틀리는 지점입니다. 계통수를 위로 올라가는 계단처럼 읽으면 안 돼요. 갈라지는 가지로 읽어야 합니다. 그래서 다음 두 문장은 완전히 틀린 문장입니다.
- "사람은 침팬지에서 진화했다" — 아닙니다. 두 계통은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각자 진화했습니다.
- "세균은 진화가 덜 된 원시 생물이다" — 아닙니다. 지금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은 공통 조상으로부터 정확히 같은 길이의 시간을 거쳐 왔습니다. 오늘의 세균은 35억 년 전의 세균이 아니에요.
그럼 복잡성이 늘어난 것처럼 보이는 건 왜일까요. 출발점이 가능한 가장 단순한 쪽이었기 때문입니다. 벽에 붙어서 시작하면 움직일 수 있는 방향이 한쪽뿐이라, 계통들이 무작위로 흩어져도 전체 분포의 오른쪽 끝은 계속 멀어집니다. 그렇다고 대부분이 복잡해지는 건 아니에요. 지금도 지구에서 가장 흔한 생물은 단세포 원핵생물입니다. 최댓값이 커진 것과 평균이 커진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쌤 한마디 — 생기부에서 진화를 다룰 때 채점자가 가장 빠르게 수준을 판별하는 문장이 있습니다. "~하기 위해 진화했다", "더 고등한 생물로 진화했다" 두 개예요. 이 문장이 들어가면 나머지가 아무리 좋아도 개념이 흔들린다고 읽힙니다. 대신 이렇게 쓰세요. "~한 변이를 가진 개체가 그 환경에서 더 많이 살아남아 빈도가 높아졌다". 문장이 길어지는 게 아니라 인과의 방향이 반대라는 점이 핵심입니다.
정리하면
큰 형태 변화는 새 유전자를 대량으로 만들어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있는 발생 프로그램의 타이밍(이소시성)과 발현 위치(호메오 유전자), 그리고 조절 서열을 바꾸는 것만으로 몸은 크게 달라집니다. 그래서 짧은 시간의 적응 방산에서도 형태가 빠르게 갈라질 수 있어요.
그리고 그 변화에는 방향이 없습니다. 자연선택은 앞을 보지 못하고, 기존 구조를 땜질하며, 그 결과로 남은 어색한 구조들이 오히려 진화의 증거가 됩니다. 계통수는 사다리가 아니라 갈라지는 가지이고, 지금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은 같은 길이의 시간을 지나온 현재의 생물입니다.
Ch.25는 여기서 끝납니다. 이 챕터는 생명의 기원에서 시작해 연대측정으로 시간 축을 세우고, 최초의 세포에서 육상 진출까지의 사건들을 올린 뒤, 대멸종과 판구조론으로 그 흐름이 직선이 아니었음을 보았습니다. 아직 안 읽은 글이 있다면 순서대로 돌아가 보시길 권합니다.
틀린 내용이나 더 궁금한 점이 있으면 문의하기로 알려 주세요. 확인한 뒤 고치고, 고친 날짜를 위에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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